먼저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책의 원제는 『Une fille de…』로, 우리말로 하면 ‘…의 딸’이다. 여기에서 ‘…’이 가리키는 것은 프랑스어로 ‘pute’, 즉 매춘부이다. 원래 이 표현은 ‘딸’이 아닌 ‘아들’을 사용해서 쓰는 욕설이어서 ‘fils de pute’로 쓰고,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 ‘son of bitch’ 정도 되겠다. 일상적으로 많이 하고 듣는 욕설이다. 그런데 저자가 일부러 ‘매춘부’라는 말을 생략한 이유는 무엇일까?
매춘은 청소년 소설에서 다루기에는 매우 무거운 주제이다. 이 직업군에 관한 우리의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의 딸입니다』는 편견에 대한 소설이다. 그 편견은 매춘부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내리꽂힌다. 한나는 자신의 엄마를 비난하는 우리에게 당신들의 아버지가, 남편이 바로 엄마의 고객인 것을 아느냐고 묻는다. 엄마가 납치를 당해 매춘부가 되었을 때, 미성년자인 줄 알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뻗는 고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면서 비정한 사회를 탓한다. 물론 이 책이 매춘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이 인간답기를, 적어도 위선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한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성매매는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16 성매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한국 남성 중 절반 이상이 평생 한 번 이상의 성 구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한 지자체에서 성매매 여성이 다른 경제 활동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 돈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건실한 청년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주장이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 사회가 최하층에 속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의 딸입니다』는 아픈 소설이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울부짖음이다. 이 책은 한나를 통해 사회가 보듬어야 할 약자가 보호받지 못할 때 어떠한 고통 속에서 살게 되는지 낱낱이 그려 낸다. 다행히 무력했던 한나는 희망의 불씨를 만난다. 달리기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한나의 모습은 페미니즘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한나가 남자친구 놀란을 만나 사랑하는 모습은, 여성의 적은 남성이 아니라 ‘비뚤어진 남성성’임을 깨닫게 한다.
한나가 꿈꾸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꿈꾸는 사회일 것이다.
“하룻밤에 남자 두 명과 키스한 여자는 예외 없이 헤프다고 낙인을 찍으면서 하룻밤에 여자아이 두 명과 키스를 했다고 자랑하는 남자아이를 부러워하지 않기를 꿈꾼다. …… 남자아이의 욕망이 여자아이의 욕망보다 앞서지 않는 학교, 비판보다는 협력이, 지배보다는 연대가 중시되는 학교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