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백문백답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이야기책이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반 세속의 상식에 물들지 않은 동심들이 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 백문백답은 어린 천심에서 우러나온 질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답 또한 천심을 보는 혜안이 없으면 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어린이와 주고받은 백문백답은 일반 상식이나 막연한 종교적 신념의 지식으로는 대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순진한 어린이들이 묻고 있는 답은 지고한 인간 의식의 절정을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념(邪念)으로 만들어진 지식이나 삶의 상식은 어린이들도 너무나 시답잖게 여겨서 듣지도 않습니다. 현대과학으로 무장된 어린이들에게 지금 여기 산성 할아버지가 천심의 답을 주고 있습니다.
아, 진리의 알맹이를 알고파 묻고 있는 법동자(法童子)들이여!
설사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너무나 어렵고 난해하더라도 애써 꼭 읽어나 두거라. 읽어만 두면 반드시 먼 훗날 조건 없는 행복이 여러분들의 가슴에서 일어나리라.
그리고 모든 이들이여!
여기 이 어린이와 주고받은 산성 할아버지의 백문백답의 책을 주의 깊게 읽어 두세요. 읽어 보시면 진실로 아는 것이 무엇이며, 실로 굶주린 인간 영혼에게 주는 만찬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늙은이도 독자 여러분들의 삶의 향기에 큰절을 올리면서 멀리 멀리 물러가겠습니다.
세상의 삶이란 본래로 무척 고달픕니다. 고달프지만 그 고달픔을 지켜만 보고 사노라면 그 어느 날, 그 지켜보는 자가 우리를 영원한 행복의 고향으로 안내해 줄 것입니다. - 서문
저는 남의 나라 역사 속에 뒹구는 영웅호걸들의 칼부림 얘기에는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오로지 온 인류의 본질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너를 알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좇아 천자문을 풀이해 보기로 했습니다. 필자는 이 천자문을 바로 나 자신을 아는 지혜의 등불로 삼고, 온 인류가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했습니다.
저는 남의 나라 역사 속에 뒹구는 영웅호걸들의 칼부림 얘기에는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오로지 온 인류의 본질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너를 알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좇아 천자문을 풀이해 보기로 했습니다. 필자는 이 천자문을 바로 나 자신을 아는 지혜의 등불로 삼고, 온 인류가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했습니다.
이 글은 존엄하신 대한민국 윤 대통령님과 교육부장관님께 올리는 〈소망의 한문漢文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 각 도의 교육감님과 각 대학의 총장님들께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한문漢文은 남의 나라 문자文字가 아닙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수억 년을 두고 만드신 고귀한 문자文字입니다. 뿐만 아니라 순수 우리말 한글의 교본도 한문漢文입니다.
그런데 국가의 지도자와 저 숱한 대학의 총장님들은 한문漢文이 우리나라 글인지 남의 나라 글인지조차 모르는 듯합니다. 그렇다보니 후학들에게 가르칠 의향조차 없는 것이겠지요.
물론 극소수의 한문漢文 애호가님도 계십니다. 하지만 한문은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일대사一大事입니다. 그런 연유로 윤대통령님과 교육부장관님께 한문漢文을 꼭 국어 영역 필수 국정교과로 지정해 주십사 요청을 드리고자 이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필자는 이 책에서 한문漢文의 지묘至妙한 요체要諦를 간명하게 밝혀두고자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단 한 번이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가 한문漢文에 대하여 과연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가를 단박에 깨우칠 수 있습니다.
교육의 본래 취지는 금세기처럼 잘 먹고 잘 살기위한 산업화는 아닐 것입니다. 물론 성인
聖人도 시대에 따라서 그 세상에 맞추어서 나오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육도 시대의 흐름에 따를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도 교육의 본래 목적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는 반조회관返照廻觀의 지혜智慧”임이 분명합니다. 바로 저 반조회관의 지혜를 주는 문자文字는 한문漢文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후학들은 한문을 전연 모릅니다. 우리의 글인데도 불구하고 한문을 까맣게 모르고 삽니다. 한문漢文을 모르면 우리말의 본뜻을 전연 모르게 됩니다. 뜻을 모르고 사용하는 업보는 무섭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 눈과 두 귀로 그 업보를 똑똑히 보고 듣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아닙니다. 정치꾼들은 입만 뻥긋 하면 국민을 위한다며 거짓말을 합니다. 국민을 위하는 척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 챙기기만 급급합니다. 그러니 나라가 어찌 하루라도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두는 국가지도자와 교육지도자들이 후학들에게 자기를 돌이켜 보게 해주는 한문교육漢文敎育을 시키지 않은 망국의 재앙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한문漢文을 하루빨리 국어 영역의 필수 국정교과로 꼭 지정해 주십사 호소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휴전선 너머의 북한 역시 ‘이두문吏讀文’이란 어휘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문漢文은 세계 어떤 문자에도 없는 초성으로 의미를 읽는 ‘의성意聲’과 그 문자의 무량한 철리哲理를 외우는 ‘의음義音’인 두문頭文으로 되있습니다.
‘두문頭文’은 불가사의한 ‘주문呪文’과 같은 신통력神通力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 ‘천天’자를 예로 들면 처음 의미를 읽는 ‘하늘’이란 초성의 ‘의성意聲’이 있고, 또 그 문자文字에 무한량 철리哲理를 외우는 ‘의음義音’의 ‘두문頭文’인 내면의 소리 ‘두음頭音’이 별도로 있습니다. 바로 저 ‘의음義音’은 그 문자文字의 머리의 ‘음音’이라고 해서‘두음頭音’ 혹은 ‘두문頭文’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한문漢文의 문리文理를 설총 선생은 ‘이두문吏讀文’이라 했습니다. ‘이두문吏讀文’에서 ‘이吏’자는 조어사로 풀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다’의 뜻입니다. 그리고 ‘두’자인 읽을 ‘독讀’자는 ‘두’라고 발음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 평소에 사용한 생활용어 자체가 모두 한문漢文의 ‘이두문吏讀文’입니다.
예로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는 사람 ‘인人’자의 ‘의성意聲’이지만 ‘인간人間’이라고 했을 때는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고 있다”
란 철리哲理의 ‘두음頭音’으로 ‘인간人間’입니다. 사람 ‘인人’자의 ‘두음頭音’인 ‘인’자와 사이 ‘간間’자의 ‘두음頭音’인 ‘간’자를 붙여서 ‘인간人間’이라 했습니다.
우리말은 모두 의미를 읽는 의성意聲이 아니면 ‘두문頭文’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우리말의 문리文理를 ‘이두문吏讀文’이라 했습니다.
또 우리 한글의 뿌리도 한문漢文에 있습니다. 한문漢文의 ‘의성意聲’은 한글의 ‘모성母聲’의 뿌리이며, 한문의 철리인 ‘의음義音’은 한글’의 뿌리입니다. 물론 많은 학자님들의 연구가 꼭 필요한 얘기입니다.
우리말에서 한문漢文을 제외하고 나면 평상시 쓰고 있는 생활용어의 뜻이나 문자文字의 뜻을 전연 모르게 됩니다. 당연히 언어言語와 문자文字에 뜻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언어言語나 문자文字의 뜻은 모두 한문漢文의 초성인 ‘의성意聲’이 아니면 그 문자의 두문頭文인 ‘의음義音’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한문漢文은 본디 우리 민족의 글자입니다. 그래서 한문을 외국어 영역으로 교육하는 것은 누가 들어보아도 정상적인 국가의 교육이 아닙니다. 국어 영역의 교과로 채택을 해서 교육해야합니다.
한때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한문전폐의 시책으로 심지어 사람의 몸에 달리고 뚫린 ‘자지自指’, ‘보지保指’를 우리말로 ‘보지保指’는 ‘떨림’으로 ‘자지自指’는 ‘쑤시개’라는 순우리말로 개명해 놓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북한에는 훌륭한 학자들이 있었나 봅니다.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주석님께 간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북한에는 한문漢文을 1,800자까지 후학들에게 가르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학이 수두룩합니다. 그곳 회전의자에 앉아 계시는 총장님도 수두룩합니다. 그리고 그 대학에는 넘치고도 남는 무수한 석·박사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어째서 뜻도 없는 외국어에는 그렇게들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면서 제 나라 제 조상의 문자文字, 그것도 십억 년 동안을 갈고 닦아놓은 한문漢文에는 어찌 그리도 무심하실 수 있습니까? 석·박사들은 우리가 늘 쓰고 사는 언어문자言語文字에 대해서 어찌 그리도 무관심 하실 수 있습니까?
도무지 한문漢文에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항차 후학들의 심각한 정신문제에는 눈길 한 번 주지를 않습니까? 이게 정말로 학자의 길입니까?
그래서 비학非學 천재淺才한 필자가 알고 있는 한문漢文의 불가사의를 후손들에게 조금 이라도 귀띔해주려고 이 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누구든 꼭 한 번은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읽어 본다면 우리가 한문漢文에 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가를 먼저 깨우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어디 한국 사람들이 책을 봅니까? 손안에 든 휴대폰을 보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지 천금 같은 책은 한 권도 보지 않습니다.
마치 정치꾼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사서삼경은 고사하고 〈천자문〉 한 권조차 제대로 배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을 심판 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씹고 사는 인간들이 정치무대에 들끓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상상도 못할 크고 작은 살인사건들이 부절不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잔혹하고 무서운 정신병들을 치료하는 명약은 조상님들이 이미 개발을 잘 해두신 한문漢文 교육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한문漢文의 불가사의를 최대한 알기 쉽도록 소책자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단 한 번만이라도 이 책을 읽어 보신다면 누구나 한문漢文의 무량한 정
신철학과 한문漢文의 무량한 명리命理를 금방 깨치실 것입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교육부장관님 부디 조상의 지혜인 한문漢文으로 혼탁한 세상을 좀 밝혀주세요. 고맙습니다. - 서문
<천수경>을 해설해 가면서 느낀 것은 <천수경>이 알기 쉬운 경전도 아니려니와, 실은 뜻을 아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신비로운 경임을 알았습니다. 오로지 굳건한 믿음 하나로 성불할 수 있는 가르침의 경이요, 그 비법은 바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열심히 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비로운 가르침에 감히 누가 무슨 말을 더하고 빼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