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직후 남북이 갈라서기 전까지, 좌우 대립이 한창이던 때, 우리 민족사에서 홍명희만큼 남북 단일정부 수립을 간절히 원하고 주장했던 지식인도 드물 것이다. 그는 일제가 패망한 8·15를 우리 민족의 진정한 독립·해방으로 본 것이 아니라, 미·소 점령 사건으로 보았다. 우리 민족의 현실 문제를 올바로 풀기 위해, 미국의 대소 외교 정책에만 의존하지 말자는 게 당시 그의 지론이었다. “미·소 어느 나라임을 막론하고 자기들의 세계정책과 우리 문제는 반드시 이해가 일치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던 것이다. 이념에만 경도되어 편 가르기에 목숨 걸었던 많은 지식인들과 달리, 당시 국제 정세를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읽어낸 것이다.
더욱이 그가 6·25 전쟁을 예견한 점은 소름 돋는 일임과 동시에 비극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 고난이 7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그의 지적 능력의 탁월함과는 상관없이 우리 민족사의 불행이 아직 그대로 이어진다는 게 문제이다. 소비에트연합이 해체된 오늘의 현실에서는 미·소가 미·중으로 바뀌었을 뿐이니 말이다.
물론 홍명희의 그러한 통일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일제 강점이 시작된 때부터, 특히 그의 부친 홍범식 열사께서 경술년 그 날을 맞아 자결한 이후부터, 방랑생활, 방대한 독서, 독립투쟁, 옥고, 『임꺽정』 창작을 비롯한 광범위한 계몽적 글쓰기, 남북 단일정부 수립운동 등, 그가 겪은 부단한 고통과 올곧게 실천한 저항 운동들이 그의 세계관을 그렇게 형성한 것이다. (중략)
이 책에서 필자는 그러한 숙제의 밑거름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마련하였다. 1부에서는 홍명희가 살았던 역사의 현장, 동학혁명, 1차 세계대전, 일제강점기, 3·1 독립혁명, 2차 세계대전, 8·15, 6·25, 민족 분단의 고착으로 이어진 역사의 실제 현장에서 그의 사상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역사 현실에 기여했는가를 고찰했다. 그 사상 체계의 바탕은 위에서 언급한 반봉건, 반일제, 민족 해방이었고, 그것은 반전사상과, 반문명사상, 애민사상과 연계되어 궁극적인 인간 해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2부에서는 그러한 사상이 『임꺽정』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었는가 하는 구조 원리를 분석해, 그것이 민족사 전체 흐름 원리에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하는 문제를 종합했다. 소년기까지 유가사상을 통해 합리적인 사고 체계를 다졌고, 청년기에 들어서서 서양의 다양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두루 익혀 당대 ‘천재’라는 세평을 들었던 홍명희는 『임꺽정』을 창작하는 데에서, 그의 인물평을 했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실증 논리 이상의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특히 조선조 4대 사화로 얼룩진 역사의 피폐한 현장에서 화적 노릇을 하다가 참혹한 죽임을 당한 임꺽정이라는 실존 인물을 400년 후 일제강점기 피지배 현실에서 재현시켰다는 작가의 창작 의도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그의 그러한 탁월한 상상력의 진의를 민족사적 맥락에서 더 섬세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허균 소설과 박지원 소설의 인물들과 비교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한 작업을 하다 보면, 홍명희가 꿈꾸던 인간 해방이 인류의 실제 역사 진행에서, 실증 논리와 그를 바탕으로 꾸려진 제도를 통해 온전히 이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에 대한 답 또한 마찬가지다. 늘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오늘의 상황이 그 점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홍명희, 박지원, 허균이 일상 의미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통해, 각각 당대 사회의 일상에서 일탈될 수밖에 없었던 문제적 인물들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문제화시키고 재창조해냈는가 하는 면면을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