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오르는 길 끝에 차를 세우고 비 오는 소리 듣는다. 추적추적 동그란 물무늬를 그리며 차창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 숲의 머리 위에도 얼굴에도 가슴속에도 뜨거운 빗줄기 흘러내린다. 쏴아쏴아, 나뭇가지들 수런거리며 온몸이 차갑도록 비에 젖는다. 겨우내 잠들었던 산수유 진달래, 벌컥벌컥 빗물을 들이켜고 춥고 긴 겨울을 지나와 목마른 소나무며 참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숨 벅차도록 수액을 빨아올린다.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산불처럼 언젠가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저 나무들처럼 살고 싶다. 눈 녹아 흐르는 계곡 물소리 빗소리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신록의 잎사귀들 키우며 푸르게 살고 싶다. 얼어붙은 땅속의 뿌리를 적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 나무들 활짝 기지개를 켜고 눈 틔우는 소리 들린다.
시인은 이슬을 먹고 살아야 한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지독한 외로움, 지독한 그리움의 생채기에서 흘러내리는 그 투명한 수액을.
나의 시는 몇 개의 중독으로 이루어졌다. 알코올중독, 니코틴중독, 애정 결핍 그리고 지독한 가난과의 싸움.
내 시는 그 몇 가지의 중독이 남긴 결과물 즉 배설물들이다. 내 죽어 몇 개의 사리는 남기지 못할망정 여기 이렇게 살았다는 영역 표시를 해보는 것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첫 시집을 내면서 마음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건 나의 깊은 중독증으로 인한 설사를 너무도 많이 한 탓이다. 더럽고 치사한 이 세상을 갈아엎지도, 뒤집지도 못한 탓이다.
이제는 가슴속의 새들을 꺼내어 하늘 높이 날려 보내려 한다. 부디 높고 멀리 비상하여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노래해다오. 사랑과 평화의 새가 되어 아름다운 노래를 해다오.
2015년 한여름 산막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