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내가 시각 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쳤을 때 학문적인 지각 연구에 대해 몹시 좌절감을 느꼈다. 대신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팽배했던 자유주의 사조의 영향을 받아 예술가로 진로를 바꿨고 지각을 다른 방식으로 탐구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3년 후에 사람이 보는 행위와 정보를 표현하는 방법의 관계에 대해 점점 더 흥미를 갖게 됐고 이전보다 더 넓어진 시각으로 학계로 다시 돌아왔다. 토론토 대학에서 지각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후 워털루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 전공으로 옮겨 학위를 더 받고, 그때부터 현재까지 데이터 시각화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지각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유의미한 정보의 표현 방법에 적용하려는 나의 직접적인 연구 결과물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에서 내 연구는 예술이고, 지각에 관한 과학이 어떤 형태의 패턴이 가장 쉽게 읽히고 지각되는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과학이다.
우리는 왜 시각화에 관심을 가져야만 할까? 인간의 시각 체계는 강력하면서도 섬세한 패턴 탐색자다. 눈과 뇌의 시각 피질은 인간의 인지적 기능을 달성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병렬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있다. 높은 수준의 정보 처리에서 지각과 인지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그런 이유로 '이해하다(understanding)'라는 말과 '보다(seeing)'라는 말은 동의어가 된다. 그러나 시각 체계는 자체적인 규칙을 갖고 있다. 우리는 어떤 패턴을 무척 쉽게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면 잘 볼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goggle'이라는 글자가 그림과 함께 보일 때 글자가 그림 밑에 있는 것이 그림 위에 있을 때보다 더 잘 보인다. 양쪽 경우에 글자는 다 보이지만 글자가 그림 위에 있으면 방해 자극(noise)처럼, 즉 무의미한 정보로 인지된다.
일반적으로 데이터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되면 패턴은 쉽게 지각될 수 있다. 인간의 지각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이러한 지식은 데이터를 표현할 때 필요한 가이드라인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지각에 기반을 둔 규칙을 따라 정보를 표현하면 중요하고 의미 있는 패턴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 이런 규칙에 어긋난다면 우리의 데이터는 이해할 수 없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책은 지각에 관한 과학이 시각화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행위에 대해 한 세기 이상의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이 책의 목적은 그러한 연구 성과 중에서 정보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원칙을 추출하는 것이다.
시각화는 매우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전통적인 예술 학교의 그래픽 디자인과 같은 방식으로 연구할 수도 있다. 프로그래밍 알고리즘에 치중하는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상징체계에 대한 구성주의적 접근의 일부로서도 연구될 수 있다. 매우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지만 지각에 근거한 과학적 접근 방식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인간의 시각 체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디자인 규칙을 기대할 수 있다.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연구해 온 지각 연구는 지난 30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로 우리가 보는 방법과 데이터 시각화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방대한 정보는 아주 전문적인 학술지에서만 다루고 있고, 오직 과학자들만 연구 결과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인간의 지각에 대한 연구 결과는 그 양이 방대하다. 매달 수백 편의 새로운 논문이 출간되고, 그들 중 놀랄만한 수의 연구가 정보의 표현에 이용된다. 이러한 정보들은 실수를 줄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도움으로써 좀 더 좋은 디스플레이를 디자인하는 데 무척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