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 생애를 그림으로 살다 그림으로 죽어갔다. 천재니 귀재니 하는 호칭까지 나왔지만 불경스럽게도 근래 가짜 그림이 판을 쳐서 그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있다. 기왕 가짜 그림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의 귀에 생생이 남아있는 그의 자학적인 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그림은 가짜야" 하며 주변의 그림을 몽땅 쓸어 모아 "불살라 버리겠다"고 하던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내가 불사르겠다던 그림 뭉탱이를 뺏어 간 일도 있다. 대구 시절의 일이다. 대구 역전앞 여관에 작가 최태웅씨와 함께 머물러 있을 때였다. 이튿날 여관에 들렀더니 최씨가 선뜻 나서며 "그림 불살랐느냐"고 다그쳐 물어왔다. 나는 여유있는 태도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럴 수 있나요?" 했더니 "도로 가져오라" 해서 돌려줬지만 말이다.
요즘 이중섭 그림의 진위(眞僞)가 법망(法網)에까지 점화되어 야단법석이다. 이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가짜라고 한 것은 그리고 싶은 걸 제대로 못 그렸다는 뜻도 있겠지만 자료부족으로 또는 처지가 불안해서 진짜가 되다 말았다는 뜻도 포함된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자기 작품을 걸작이라 하지 않듯이 겸손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생전에 두 번 있은 개인 전람회, 즉 미도파 화랑과 대구 미공보관 전시실에서 있은 전람회에서 사겠다고 가져간 그림은 있어도 그림값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분풀이를 "내 그림은 가짜"라고 자학으로 얼버무렸는지도 모른다.
요즘 매스컴에서 들먹이는 이중섭 그림의 진위 시비는 이와는 차원을 달리한 세속적인 의미의 사기성을 띠고 있따. 지금까지의 위작은 원작의 복사가 태반이고 다음은 모작(模作)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