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더 만나고 싶다. 시를 더 깊게 경험하고 싶다. 수상 소식을 들은 날, 자전거를 타고 불광천을 한참 달렸다. 쓰고 싶다. 무엇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시를 쓰고 싶다. 질문을 놓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가득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좋은 시인들의 시를 읽을 수 있어서, 그 덕분에 나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쓰고 있는 것 같다. 함께 쓰고, 함께 읽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밤과 낮을 지나며, 여름과 겨울을 지나며 오늘도 한 문장을 더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시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계속 쓸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한다. 물론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그냥 한다. 어쩐지 그러면 계속 쓸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쓰는 것도 사실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무엇을 쓸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다. 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는 일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계속 질문할 수밖에.
요즘엔 질문보다 의문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쓴다. 질문은 나의 삶과 무관하게 할 수 있다. 호기심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의문은 나의 삶을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다. 나와 무관한 방식으로는 어떤 의문도 가질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시에서 필요
한 것은 계속되는 의문 아닐지.
요리에 후추를 넣는 타이밍은 다양하다. 처음부터 넣을 수도, 중간에 넣을 수도, 마지막에 넣을 수도 있다. 넣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의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에세이 「후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