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유려한 문체만으로 이미 탁월하다. 또한 대화가 살아 있고, 묘사는 독창적이다. 이창래는 실로 대가다운 솜씨로 언어를 다루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탐욕스런 소비문화를 부각하기 위한 소위 ‘브랜드’와 ‘상품’에 대한 자세한 묘사 역시 인상적이다.
그의 글은 그의 부유하는 욕망의, 아니 오히려 그것의 부재의 표정이다. 그것은 비록 불완전하긴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을 둔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관념과, 그가 그것을 모태로 태어날 수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태어나고 있는 상상과, 그를,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침범하는, 하지만 그의 안에서 부서지고 마는 영상으로,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균열을 요구하는 단어와, 스스로 의미의 사라짐을 목격하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은 서울에 있는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0년 봄부터 여름까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쓴 것으로, 내게는 샌프란시스코 표류기에 더 가깝게 여겨지는 샌프란시스코 체류기이다. 이 글에는 샌프란시스코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이 도시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이 도시에 머물면서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려 하지 않았는데 특별히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어쩔 수 없이 경험되는 대로 경험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그보다는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들리는 대로 듣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지 않고 경험한 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마음대로 뒤틀어 심하게 뒤틀리기도 한 이야기들이 있는 이 글에는 지극히 사소하고 무용하며 허황된 고찰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시도, 혹은 재미에 대한 나의 생각, 혹은 사나운 초록색 잠을 자는 무색의 관념들, 혹은 뜬구름 같은 따위의 부제를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화상》에서 작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자신을 발가벗겨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 전체를 임의로 펼쳐놓는다. 문장들은 마치 눈을 감은 채로 자루 속에 담긴 조약돌을 손을 넣어 아무렇게나 꺼내는 것처럼 전후 관련성이 없다. 작가 자신과 관련된, 건조한 사실들의 진술로 이루어진, 문단의 구분조차도 없는, 르베의 이 작품은 자서전으로 읽힐 수도 있고, 작가 스스로는 소설이 아니라고 하지만, 허구가 곧 소설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 완벽한 소설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 일상들의 단면들을 아무런 구조적 형식 없이 나열하는 것으로 《자화상》은 일상적인 것들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해준다.
나는 나를 허물며 나의 허물어짐을 구축해가는 걸까. 허물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허물어짐과 함께 허물어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라는 자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에서 비롯되고 나아가고 다시 그 질문에 이르게 되는 나의 무모한 글쓰기가 놓이고자 하는(무)의미의 공간상의 지점은 어디일까, 라는...라는...일 수 밖에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