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릇'은 포용력이 넓은 사람을 일컫고, 옹졸하여 믿음이 쉬 가지 않는 사람은 '그릇이 작다'라고 한다. 기대를 저버리거나 실수로 주위 사람을 실망시켰을 때 원망하는 뜻으로 "너는 그릇이 왜 그 모양이냐?"라고 한다.
'깨진 그릇'이라는 비유도 있다. 금이 간 그릇에는 물을 담아 둘수 없듯이, 인격과 성품에 결함이 있어 믿음을 주지 못할 때 곧잘 쓰인다. 이런 말들은 아주 오랜 사회적 관습에서 저절로 생겨난 비유와 은유의 철학들인데, 사람과 그릇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하고 오래 되었는지 금방 느낄 수 있다.
161년 전이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이 일어나기 몇 달 앞서부터 진주지방 곳곳에서 아이들이 뛰놀면서 떼창으로 불러대던 이상한 노래의 노랫말이다. 임술진주농민항쟁은 32년 뒤 동학농민운동을 태동시킨 역사적 선구인데, 동학은 자랑스런 혁명으로 기려지고 있지만 진주농민항쟁은 잊혀져간다.
그 노랫말을 새긴 기념물도 함께 외면당하고 있는 듯싶어 부끄럽고 아프다. 아픔은 참아서 약이 된다고 하지만 부끄러움은 덮어도 죄가 되고 후회로 남는다는 인류의 보편경험을 외면하지 않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책을 펴놓는다.
어쩌다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속에 푸른 당산 소나무 숲이 드리워져 있는 한 고향은 소나무 마음으로 살아 있는 것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란 그들 마음에서 늘 푸른 소나무가 사라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마음엔 언제나 한 그루의 푸른 솔이 서 있습니다.
그 역사 안에서 오롯이 남겨진 비밀 같은 증거가 다름 아닌 이 땅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에 대해 기도하고, 노래하고, 섬기라는 전통이었다. 그리하여 지구 위의 어떤 민족, 어떤 관습, 어떤 종교와 신들이 와도 이 땅에서는 새 생명을 얻어 번영하고 새롭게 산다. 생명의 젖은 물, 물은 차의 신이 내래시는 몸이다. 그리하여 다만, 차 한 잔에 담긴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