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는 한 번도 자신이 직접 책을 쓴 적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그의 글 모두는 그가 대중에게 강의한 내용을 그의 제자들이 책으로 엮은 것이다. 영상과 음성 자료로만 존재하거나 아직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원고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오쇼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 심리학, 종교, 철학 등 인문학 분야의 서적들을 섭렵했다. 이 책은 오쇼가 평생 읽어 온 수많은 책들 가운데 저 너머의 세상, 궁극의 그 무엇을 일별一瞥하게 해 준 동서양의 작품들을 소개한 작품이다. 이제 이 책에서 오쇼가 선택한 주옥같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 책 [내가 사랑한 책들]은 오쇼가 치과 치료용 의자에 앉아서 몇몇 제자들과 주치의들에게 친밀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1982년에 출간한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내용 중간에 제자나 주치의 개개인에게 하는 대화가 섞여 있다. 내용의 흐름상 그 짧은 대화들을 빼고자 했으나, 오쇼는 그런 대화도 모두 의미가 있다고 말했으므로 번역과 편집 과정에서 한 문장도 빼지 않았다.
오쇼의 강의에서는 유독 반복되는 문장이나 어구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듣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오쇼가 만든 일종의 장치이며, 우리는 오쇼의 그러한 깊은 배려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의 목록만을 섭렵하는 것은 무의미하므로, 별도의 목차를 만들지 않았다. 오쇼가 왜 그 작품을 선택했는지, 그에 얽힌 사연은 무엇인지를 되새기며 오쇼의 말대로 그 책들을 ‘명상’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아주 드물게 ‘읽지 말아야 하는’ 책들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오쇼의 이번 강의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 ‘명상’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삶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다. 그대가 영원의 노래를 부르고, 신성의 향기, 신神의 향기를 내뿜고, 죽음과 시간을 초월한 연꽃이 될 수 있을 때에만 삶은 의미를 지닌다. 순수한 사랑이 되고, 이 존재계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이 존재계에 축복이 될 수 있을 때에만 삶은 의미를 갖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무의미하다.
삶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텅 빈 캔버스와 같다. 평생 동안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다가 결국 그 무게에 눌려 죽게 된다면, 그 삶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위에 무언가를 그려 넣어라!
삶의 의미는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대는 자유와 창조성과 삶을 부여받았다. 삶의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그대에게 주어진다. 삶의 핵심적인 재료들이 모두 주어주지만, 삶의 의미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창조해야 한다. 그대는 자신의 뜻대로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자신의 삶에 창조자가 되었을 때, 그대는 신神과 함께 창조의 과정에 동참하게 되고 신神의 일부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