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이 고통스러운 작업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불쑥불쑥 다가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청순하지만 생의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는 대식과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순수한 사랑, 미치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들을 허허한 들판에 무참하게 내팽개치고 도피할 생각이냐, 그것은 무정하고 잔인한 일이 아니냐 하는 질책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가 다시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게 된 것은 첫 책이 나오고 10년이 흐른 뒤였다. 처음 펜을 잡았을 때 내가 몇 살이었고, 소설을 모두 끝냈을 때 내 나이가 몇이 되었는지 나는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원고에서 손을 떼고 이제 막 창 너머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긴 여정 속에서 넘고 건너온 산하를 뒤돌아보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에서 묻혀져 버린 현실의 고통스러운 사건과 체험들을 돌이켜보고, 그것들이 지시하는 엄숙한 진실을 되새기는 기회를 가지기를 바란다. 우리 기성세대가 겪어온 역사감각으로 우방이라고 일컬으는 미국이나, 이웃나라인 중국, 특히 일본을 평가하고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상호이해와 발전에 크게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편견을 유산으로 줄 수는 없는것이 아닌가.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에서 묻혀져 버린 현실의 고통스러운 사건과 체험들을 돌이켜보고, 그것들이 지시하는 엄숙한 진실을 되새기는 기회를 가지기를 바란다. 우리 기성세대가 겪어온 역사감각으로 우방이라고 일컬으는 미국이나, 이웃나라인 중국, 특히 일본을 평가하고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상호이해와 발전에 크게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편견을 유산으로 줄 수는 없는것이 아닌가.
글을 쓴다는 이 고통스러운 작업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불쑥불쑥 다가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청순하지만 생의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는 대식과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순수한 사랑, 미치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들을 허허한 들판에 무참하게 내팽개치고 도피할 생각이냐, 그것은 무정하고 잔인한 일이 아니냐 하는 질책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가 다시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게 된 것은 첫 책이 나오고 10년이 흐른 뒤였다. 처음 펜을 잡았을 때 내가 몇 살이었고, 소설을 모두 끝냈을 때 내 나이가 몇이 되었는지 나는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원고에서 손을 떼고 이제 막 창 너머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긴 여정 속에서 넘고 건너온 산하를 뒤돌아보았다.
글을 쓴다는 이 고통스러운 작업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불쑥불쑥 다가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청순하지만 생의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는 대식과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순수한 사랑, 미치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들을 허허한 들판에 무참하게 내팽개치고 도피할 생각이냐, 그것은 무정하고 잔인한 일이 아니냐 하는 질책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가 다시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게 된 것은 첫 책이 나오고 10년이 흐른 뒤였다. 처음 펜을 잡았을 때 내가 몇 살이었고, 소설을 모두 끝냈을 때 내 나이가 몇이 되었는지 나는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원고에서 손을 떼고 이제 막 창 너머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긴 여정 속에서 넘고 건너온 산하를 뒤돌아보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에서 묻혀져 버린 현실의 고통스러운 사건과 체험들을 돌이켜보고, 그것들이 지시하는 엄숙한 진실을 되새기는 기회를 가지기를 바란다. 우리 기성세대가 겪어온 역사감각으로 우방이라고 일컬으는 미국이나, 이웃나라인 중국, 특히 일본을 평가하고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상호이해와 발전에 크게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편견을 유산으로 줄 수는 없는것이 아닌가.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에서 묻혀져 버린 현실의 고통스러운 사건과 체험들을 돌이켜보고, 그것들이 지시하는 엄숙한 진실을 되새기는 기회를 가지기를 바란다. 우리 기성세대가 겪어온 역사감각으로 우방이라고 일컬으는 미국이나, 이웃나라인 중국, 특히 일본을 평가하고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상호이해와 발전에 크게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편견을 유산으로 줄 수는 없는것이 아닌가.
글을 쓴다는 이 고통스러운 작업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불쑥불쑥 다가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청순하지만 생의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는 대식과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순수한 사랑, 미치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들을 허허한 들판에 무참하게 내팽개치고 도피할 생각이냐, 그것은 무정하고 잔인한 일이 아니냐 하는 질책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가 다시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게 된 것은 첫 책이 나오고 10년이 흐른 뒤였다. 처음 펜을 잡았을 때 내가 몇 살이었고, 소설을 모두 끝냈을 때 내 나이가 몇이 되었는지 나는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원고에서 손을 떼고 이제 막 창 너머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긴 여정 속에서 넘고 건너온 산하를 뒤돌아보았다.
글을 쓴다는 이 고통스러운 작업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불쑥불쑥 다가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청순하지만 생의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는 대식과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순수한 사랑, 미치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들을 허허한 들판에 무참하게 내팽개치고 도피할 생각이냐, 그것은 무정하고 잔인한 일이 아니냐 하는 질책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가 다시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게 된 것은 첫 책이 나오고 10년이 흐른 뒤였다. 처음 펜을 잡았을 때 내가 몇 살이었고, 소설을 모두 끝냈을 때 내 나이가 몇이 되었는지 나는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원고에서 손을 떼고 이제 막 창 너머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긴 여정 속에서 넘고 건너온 산하를 뒤돌아보았다.
글을 쓴다는 이 고통스러운 작업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불쑥불쑥 다가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청순하지만 생의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는 대식과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순수한 사랑, 미치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들을 허허한 들판에 무참하게 내팽개치고 도피할 생각이냐, 그것은 무정하고 잔인한 일이 아니냐 하는 질책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가 다시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게 된 것은 첫 책이 나오고 10년이 흐른 뒤였다. 처음 펜을 잡았을 때 내가 몇 살이었고, 소설을 모두 끝냈을 때 내 나이가 몇이 되었는지 나는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원고에서 손을 떼고 이제 막 창 너머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긴 여정 속에서 넘고 건너온 산하를 뒤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