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찾아서
“역시 이 세상에는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그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육체를 그 공간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사색기행》 중에서
오래전, 어머니는 용하다는 점집에서 내게 역마살이 있다는 말을 들으셨다고 했다. 듣는 둥 마는 둥 까맣게 잊고 살다가 건축을 전공으로 선택하면서 비로소 숨어 있던 역마살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배낭여행을 하면서 유럽의 건축에 마음을 빼앗겼는데,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을 직접 거닐면서 느끼는 짜릿함은 그 중독성이 무척이나 강했다. 결국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찾아 나는 새로운 여행을 꿈꾸는 몽상가가 되었다. 그리고 다치바나 다카시의 《사색기행》에 나오는 위의 문장을 읽으며 여행지가 아닌,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여정이 즐기고 싶어졌다. 순간, 이렇게 나이만 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평생 수박 겉만 핥다가 죽는 게 아닌가 싶은 조바심이 났다. 더 늦기 전에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마땅한 동행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큰누나였다. 책을 좋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누나는 요리도 잘하고 체력도 웬만한 남자들보다 강할 뿐 아니라 고양이 세수로 며칠이 아니라 몇 달도 버틸 수 있는 그런 아줌마 아닌가.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자마자 누나는 눈에서 광채를 내뿜었다. 이로써 여행을 위한 필수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것이다. 누나와 함께 자전거 두 대에 짐을 꾸리고 왕복 비행기 표 두 장을 사는 것으로 유럽 건축 여행 준비 완료! 코스는 사정에 따라 바꾸면 되고, 잠잘 곳은 달리다가 구하면 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곳을 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자전거 여행을 떠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