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未詳에 대한 물음
물신시대物神時代. 이 소설은 드러나지 않은 미상未詳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이자 물음이고 여행이다. 그러나 미상에 대한 복원 작업이 전해지는 미미한 몇 조각들만 가지고 다분히 상상과 허구에 의존하는지라 이견이 없을 수 없다.
그 이견을 나는 전적으로 환영하고 수용한다. 또한 부단히 지속되기 바란다. 아울러 그것이 진실에 접근하려 자료를 찾아내고 고증하려는 작업까지 부추겨서 실체의 규명에 촉진제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지다.
그러한 시시비비 거리를 제공하여 실체의 바탕에 이르게 하는 것 또한, 이 소설을 집필할 용기를 주었다. 녹슬어 가는 철 구조물도 그대로 두면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녹슬어도 자주 건드려야 산화되기 전의 철 재질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원리와 같은 이치다.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는 가장 무소불위한 영역은 아마 상상과 허구일 게다. 나는 이 소설에서 폭군처럼 그 특권을 무한대로 활용했다. 따라서 생각에 궁함이 없었고, 사물을 대함에 주저하지 않아서 힘듦 속에서도 무한 자유를 만끽하느라 행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떨 땐 조각들이 여러 형상으로 왜곡된 정보보다 차라리 남아 있지 않은 미상의 것에서 더 많은 허구와 상상을 얻을 수 있어 내 시선이 자유로워 신명마저 났다. 그러나 미상에 대한 복원 작업이란 마치 바람 냄새를 맡고 그 바람이 스쳐온 곳의 정황을 추출해 내는 일과 같아 때로는 상상으로도 한계를 느꼈던 것 또한, 부인하지 못하겠다.
또 하나 집필의 의도에는 향리鄕里의 미상인 그것, 이승휴, 죽서루, 죽죽선에 관한 애정 때문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귀에 익은 것들인데 자연의 한 모서리이듯 그 근원을 몰랐다.
역사의 흐름은 괭이질 소리를 내지 않고 삽질 소리를 내기에 개천에 구르는 차돌도 벽옥璧玉같이 여기자는 애향의 정情도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기록 남기기를 소홀히 한 왕조에 관한 관심은 때로는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조선은 시시콜콜 기록을 너무 남겨서 ‘이다 저다’ 하는 왕조지만, 고려는 죄인의 문초 기록을 형벌이 끝난 뒤면 아무렇게나 버려 훼손한 왕조였으니 남아 있는 것마다 제가끔 다르고, 그나마 남의 글을 퍼 나르면서 오탈자로 범벅되어 있어 역사 추리나 복원에서의 어려움은 성격 급한 사람에게는 적성이 맞지 않은 일임을 늦게야 깨우쳤다. 그러나 배움 또한, 컸다.
한 편의 소설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묶어 내는 데는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은 분들이 적지 않다. 자료를 제공한 이들과 처지기만 하는 집필 속도를 부추겨 준 주변 분들이 모두 그렇다. 고마운 이런 분들이 너무 많기에 일일이 지면 밖에서 감사를 드릴 작정이다. 다만 소설 자료를 알뜰히 챙겨 주고 자료 게재를 허락해 준 (사)동안이승휴사상선양회 관계자와 필자와 일면식도 없는 터에 해설을 붙여 준 평론가 남기택 교수, 책 모양새를 갖춰 준 문학세계사에 지면을 통하여 고마움을 드린다.
2016년 늦가을
서울 초광재草筐齊에서
소설집 『33년 만의 해후』를 펴낸 뒤 발표한 단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한번 정리해야지 계획하면서도 그동안 장편소설 집필하느라 짬이 없었다. 묶지 못한 여러 편 가운데 결이 엇비슷한 9편을 뽑아 엮게 되었다. 결로 봐서 한 궤에다 엮어 갈무리할 당위성, 또한 있었다. 남은 작품들은 또 달리 끼리끼리 묶어내 작가의 작의를 보다 분명히 가름해 놓을 생각이다.
선정된 9편 작품을 굳이 결을 따지자면 혈육을 향한 인간의 내밀한 감정과 존재적인 욕망을 그려내고자 의도한 작품이다. 나름대로의 판단에서는 인간의 바탕이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라 봤다. 소설 문학에서 상징과 주제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스토리 자체를 도외시하거나 간과하는 경향에 우려를 나타내는 의중도 포함됐다.
가뜩이나 단편집이 눈길을 끌지 못하는 세태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나름 애착이 가기에 망설이지 않고 결행했다. 집필한 시기의 격차로 더러는 급변하는 세태에 어긋나는 데도 있으나 굳이 고치지 않았다. 시대 분위기를 도외시할 수 없었고, 또한 바탕으로 흐르는 물길이 그것으로 굴곡 지지 않으리란 판단 때문이다.
발간 때마다 붙이는 언사인데 책을 엮어내는 일 자체가 여러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일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어렵게 출판을 맡아주신 청어출판사 이영철 대표와 정밀하지 못한 창작자 작품의 주인공들이 편집자의 문선 수고에 힘입어 더 너른 틀에서 숨을 쉬게 되었다. 삼가 감사드린다. 그리고 늘 성원을 보내주며 창의를 부추겨준 지인들에게 지면 밖으로 일일이 고마움을 전할 참이다.
2023년 이른 봄
서울 초광재草䒰齋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