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를 가든지 보고 배울 것은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유럽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그들도 모르는 것, 이미 예전에 다 잊어버린 것까지 공부하고 기억하며 여행을 떠난다. 종교적 순례여행이든, 학생들의 배낭여행이든, 우리 대부분은 무얼 배우려는 마음으로 서양 여행을 떠난다. 서양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서세동점, 근대 이후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그렇지만,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 서양과 우리 나라의 관계는 이미 그런 ‘근대적’ 관계에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 5월의 축구경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달라진 모습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참 모습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갑자기 많은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믿어지지 않는 그 모습이 이미 우리의 참 모습이다. '서세동점의 근대'는 이미 과거의 역사가 되었고, 한국은 더 이상 원조 받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그들이 과거의 유산을 자랑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자랑할 수 있다. 과거를 내세우는 사람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쪽이 훨씬 돋보인다. 그래서 그들보다는 우리의 마음이 한결 여유로울 수 있다.
가이드의 가르침을 열심히 메모하면서 다니는 '단체여행'이나 케케묵은 근대적 서양지식을 확인하는 여행이 아니라, 여유 있는 마음으로 그들의 사는 모습을 돌아보는 수준 높은 여행을 제안하고 싶었다. 입에 맞지도 않는 그들의 음식에 익숙해지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그들조차도 다 잊어버린 과거의 귀족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이, 그저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사는 모습을 돌아보는 여행, 그런 주체적인 여행을 제안하고 싶었다.
(2002년 8월 11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