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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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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포스트모던담론과 붉은자본>

바다의 노래

우리는 어느 시기부터 이게 인생이구나 하는 걸 자각하는 걸까요.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구나 하는 자각을 갖게 되는 건 그와는 훨씬 떨어진 시기가 됩니다. 저의 경우는 고등학교 시절이 그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게 인생이냐 하는 어카심정이 그때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와 청량리에서 강릉행 완행열차를 탔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직 완행열차가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 경포에서 바다를 보았습니다. 많이 초라한 그런 것. 저의 인생자각은 그렇게 바다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 바다 이야기를 해보려고 펜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었으니까요. 구체적으로는, 바다로 가 바다에서 사라지기로 한 어느 청소년기 아이의 이야기였습니다. 쓰면서 꽤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다 탈고하고 나서는 후회는 사라졌습니다. 저의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인생이야기는 의미가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짧게 살고 간 아이의 이야기라면 더 의미가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바다는 인생의 시작지점입니다. 정확히는 봄의 경포 앞바다. 이 이야기의 아이의 경우는 인생의 시작지점이 또한 마지막 지점이 되고 만 경우입니다. 슬픈 이야기지요. 바다에서 일어난 큰 사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해 페리호 사건이나 세월호와 같은…… 타이타닉이나 포세이돈 어드벤처 같은 영화이야기와도 닮은…… 마지막으로 정작 이야기에서 하지 못한 말을 끝으로 서문을 마치겠습니다. ‘뒤늦게나마 사고로 죽은 아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다행히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는 앞으로도 내내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바라겠습니다.

서청대 가는 길

소설을 쓰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특별히 동시대의 이야기를 쓰는 일이 힘들어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지금까지 일어난 일련의 한국사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심정적 원인분석은 있다. 지난 3년간 일어난 그리고 현재도 진행형인 한국사는 레떼르는 한국사라는 레떼르를 달고 있어도 실상은 한국사가 아니다. 한국을 지우기 위한 이야기만이 극성하고 지배한 역사였으니까. 그래서 동시대 한국사, 한국에서 벌어지고 일어난 일을 재구성하는 것은 몹시 어렵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냐는 물음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한국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해체되어가는 시공간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다루느냐 스스로 이런 물음이 솟구치고 자괴감이 든다. 한국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시공간이 될지 모르는데 굳이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건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그러나 늘 그렇듯이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그것을 담고자 하는 게 모든 이야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소설의 근원적 욕망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욕망에 충실하다면 그게 별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족한 일이 아닐까. 어차피 글을 쓴다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소설쓰기라면 더욱 그렇다. 도로(徒勞)가 되는 게 별로 두려울 게 없다는 거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니 한국인으로 살다 돌아가는 게 가장 무난한 인생일 것이다. 무난한 인생을 사는 건 대체로 무난한 필부필부들의 바람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시공간이 졸지에 사라져버린다면 무난한 인생은 더는 없고 달성 불가능이 될 것이다. 무난하게 살다 가고 싶은 무난한 사람들의 바람은 여지없이 산산조각 나고 만다. 잔인한 일이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더는 무난하지 않고 몹시 특별하고 엉뚱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나 한국인으로 죽을 수는 없다는 것. 한국인의 인생이 특별해지고 몹시 고달파진다는 얘기다. 무난한 인생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만큼 끔찍한 사회는 없다. 지난 삼사년간의 한국사회가 그러했다. 이 이야기는 그 끔찍함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손에는 태극기를 다른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필자는 모른다. 실은 아무도 모른다. 이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고,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이야기는 그것의 한 컷이거나 많아 봐야 몇 컷에 지나지 않는다. 부디 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19년 마지막 날에 쓰다 - 서문

아내는 어디에 있는가

꽤 오래전에 쓴 작품이다. 아마도 2000년대 초반에 완성한 작품이 아니었지 싶다. 2008년인가에 인연이 닿아 인터넷 신문 ‘뉴데일리’에 연재한 이력이 있는 작품이다. 당시에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연재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묵혀 두었던 작품이다. 한 2, 3년 전부터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고 하면서 과거의 작품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버리지 않고 취하기로 했다. 대신 제목을 『아내는 어디에 있는가』로 바꾸고 내용과 전개방식을 대폭 수정했다. 그 결과가 이제 책으로 엮게 될 모양새의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아내를 찾는 내용이었다. 도망갔거나, 잃어버렸거나 한 아내를 찾는 주인공들의 우왕좌왕, 좌충우돌을 그린 유모어였다. 그런 작품에 왜 ‘형제〜’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참 아이러니다. 아마도 이 작품을 쓸 무렵 그 속에 평소 좋아했던 코엔 형제에 대한 오마쥬를 담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정도의 추측은 떠오른다. 필자 마음의 어딘가에서부터 코엔 형제를 기리고 싶어 하는 강렬한 마음이 일고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필자가 이 작품을 버리지 못한 것은 작품에 담긴 메시지 덕분이다. 필자가 평생에 걸쳐 작품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 가운데의 아주 중요한 것이 이 작품 속에 잘 담겨 있다. 그런 경우 작가가 작품을 버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단지 미련의 차원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작품, 『아내는 어디에 있는가』가 좋은 독자들을 만나 크게는 아니더라도 작은 파문으로나마 세상에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2023년 06월 30일 섬뜰 언저리에서

포스트모던담론과 붉은자본

주석을 달고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지만, 이 글은 기본적으로 소설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소설 가운데서도 모험소설에 해당 한다고 본다. 실제로 이 글을 쓰는 삼 년여의 기간은 필자 본인에게 있어 거대한 모험의 연속이었다. 이 모험소설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영어로 adventure(모험)가 아니고는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험이 아니고서는 접근할 수 없는 대상, 존재란 무엇일까. 인간에 있어서… 악마(devil)이다. 이 글은 악마를 그 대상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필연적으로 모험소설이 될 수밖에는 없다. 악마에 접근하여 그 속성과 본질을 파헤치는데 이보다 더 큰 모험이 어디 있을까. 모험이란 본질적으로 그것이 짜릿한 위험과 서스펜스를 수반하기 때문에 모험이라 하는 것이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기 때문에 모험인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모험이 아닐 것이다. 악마에 접근해 들어가 그 속성과 본질을 파헤치는 일보다 더 위험한 일이 이 인간 세상에 어디에 또 있을까. 악마 자체가 인간 세상의 가장 큰 우려요 위험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 글은 모험소설일 밖에 없다. 모험소설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레벨에 위치하는 모험소설이다. 각주와 논증과 수많은 인용이 있어 지루하고 짜증난다 하더라도 참고 읽어가다 보면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짜릿한 위기감과 서스펜스를 경험하게 되리라고, 감히 호언한다. 이 글을 써내려가던 지난 삼 년여에의 세월 내내 필자는 솔직히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듯한 짜릿한 위기감과 서스펜스를 경험했다. 그것은 생활에 활력을 돋우는 일이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위기의 항상성은 사람을 지치고 피폐케 하는 일이었다. 결국 필자는 서둘러 이 모험소설을 마감해야 했다. 서두른 나머지 결말의 완성도가 다소, 떨어 질 수 있음을 이 자리를 빌어 미리 고백한다. 미완의 부분은 독자들이 채워 넣어주기를 바란다. 모험을 사랑하고 기꺼이 짜릿한 위기에 자신을 내던질 용의와 결의가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모험소설을 내는 작은 소망이다. ― 희망의 계절, 봄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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