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좋은 사람이야”보다는 “네가 좋아”라고 말하는 태도가 더 윤리적이다. “네가 좋아”가 안 되는 관계이거나 “네가 좋아”의 상태에서 놓여났다면 그만이다. 뭘 더 어떻게 해보기 위해 ‘너’를 ‘좋은 사람’에 가두지 않아야 한다. ‘너’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걸 잘 못해서 일상이 엉망진창이 된다. ‘엉망진창’은 문장과 불화한다. 나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너’를 호명하는 일이 ‘너’의 일상을 뒤흔드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그건 ‘너’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예의다.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다. 관계에 대한 숙고는 문장을 데려온다. 문장과 문장 간의 관계에 관여한다. 문장이 갈 길을 열어준다.
―에세이 「뼈만 남았다」 중에서
시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시에 대한 시를 쓰고 싶었다. 시로 환원될 수밖에 없는 시. 써놓고 나면 한 편의 시일 수밖에 없는 시.
언어로 시작해 언어를 경유하면서 종국에는 언어만이 아닌 어떤 지점에 가 닿고 싶었다. 대상에서 시작해 대상의 결을 통과하면서 대상 그 자체가 언어에 다름 아닌 것이 되기를 바랐다. 작업은 인위적인 것이지만 인위가 끼어든 자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가장 가까운 말에 기대 조금씩 움직였다. 일상적이지 않은 말은 끼어들 자리가 없도록, 낯선 사물은 놓일 자리가 없도록 하면서. 태양이 뜨는 자리에 바람이 부는 장면을 가져다 놓아도 이상할 게 없는, 기다리는 자의 의자에 떠나는 자의 의지를 부려놓아도 작용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도록 하면서. 맞닥뜨리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익숙했던 시간과 장소에서 가장 낯선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사람의 표정.
상을 받았으니 이런 정도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몇 문장 적었지만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져버릴 메마른 자세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이런 자세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다르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써놓고 내가 읽었다. 다른 사람이 쓴 것은 다른 사람이 읽겠지 그러면서.
그런데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덜컥 겁이 나면서도 감사하다. 조금은 더 해보라는. 해볼 만큼은 해보라는. 가장 가까운 말을 통해 가장 이상한 곳까지. 갈 데까지 가보라는. 그런 주문을 받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