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소설을 완성하여 이제 세상에 내놓게 되었으나 정작 이 소설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독자, 신 감독은 존재하지 않는다. 뒷날 나도 먼 길을 떠날 때 이 한 권의 책자는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할 것 같다. 가서 영화 만드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아득한 시공도 견딜 만하지 않을까.
‘삶의 완성’은 죽음이다. 주인공 다래가 어떻게 죽느냐, 즉 어떤 가치, 어떤 의미를 위하여 죽느냐 하는 것은 이 소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는 것과 직결된다.(…)
주인공 다래는 수운 최제우와 함께 순교로 성녀聖女의 길을 걷지 않고, 여러 지역에서 반란叛亂을 도모하다가 비참하게 목숨을 버리는 이필제李弼濟의 길을 걷는다. 이필제의 반란은 성공하지 못하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반란의 한 축을 이루며 살던 다래의 목숨도 그렇게 마감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행위만이 구원’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安重根의 질문
안중근을 만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역사가 되어버린 인물을 소설화하기 위해서는 소설가가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안중근을 만나기 위해 들어가 본 그 시대는 내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구한말 한 마리 여린 짐승처럼 제국의 이빨 앞에 무방비로 놓여 있던 나라와 민족을 목숨 바쳐 피값으로 지켜보려 했던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 소설을 시작했으나, 거꾸로 그 시대와 인물들이 오늘을 사는 필자에게 무거운 질문들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한 세기 전인 20세기 초엽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천길 벼랑 위에 서서 위태로운 생존을 이어가기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고 인식하고 있어도 목숨을 내놓고 나라와 민족을 떠받치려는 지사는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데다 얇은 고무풍선 속의 평화와 풍요를 탐닉하여 사분오열, 작은 이삭줍기에 정신들을 놓고 있으니 대체 이런 나라를 나라라고 부르기가 겁나고 부끄럽지 않은가?
잡지에 소설을 연재하던 1년 가까운 동안 주인공인 안중근이 작가에게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필자는 아직도 그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작중 안중근의 활동 무대였던 연해주와 간도 일대, 그리고 거사를 한 하얼빈과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한 요동성 뤼순까지 3, 4회씩 답사했다. 아쉬운 것은 그가 태어나 장년이 되기까지 살았던 황해도 구월산 일대와 해주, 그리고 신의주 등지를 답사할 수 없었던 일이다. 조선인민공화국 당국자에게 답사 여행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해 본 일도 없었다. 미리 단념해 버린 것이다. 뒷날 그 지역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 때 이 소설의 전반부를 보완하게 되기를 필자는 기대한다.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귀한 지면을 할애하여 연재해 준 '月刊朝鮮'편집진, 소설의 영감을 불러일으켜 준 안중근 의사 숭모회 전 이사장이었던 黃寅性 전 총리, 그리고 답사와 취재 편의를 제공해 준 안중근 의사 숭모회와 栗村財團…. 안중근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아직은 많다는 사실을 이분들로 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자칫 교과서 한쪽 귀퉁이에 실려 역사의 저편으로 묻혀 버릴지도 모르는 안타까움 때문에 안중근을 살아 있는 인물로 재생시키려 했던 필자의 노력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 그 성패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다.
... 김삿갓을 좋아하게 됐고, 김삿갓의 고뇌를 알게 됐고, 그렇게 빠져들어 좋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던 비범한 그릇을 만나게 됐다. 내가 만난 김삿갓을 그대로 그린 것이 이 소설이다. 나를 비롯하여 '부분적으로' 김삿갓과 유사한 오늘날 글쟁이들의 자화상도 조금은 겹쳐져 있다.
작고한 한 인물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하기에는 10년은 너무 짧은 세월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성철스님에 대해서라면 굳이 '평가'를 하겠다고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다. 그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머리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가슴을 열어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성철스님은 10년 전의 그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 옆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화두를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면서도 동시에 간편하게 만날 수는 없을까? 필자 자신이 오래 전부터 그런 필요성을 깊이 느껴 오던 차에 옛 사람이 편찬한 화두집에서 후세에 비교적 많이 회자되어 온 화두들만 가려서 뽑아 내고 여기에 필자의 쓸데없는 해설 대신 보충 설명을 만들어, 화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을 한 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여 궁리한 끝에 나온 것이 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