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다윗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다윗 주변에 일어난 사건들이 사실이라면, 구름 위에서가 아니고, 인간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잖는가? 그 역사의 땅을 다윗과 함께 밟고 싶었다.
다윗을 소개한 유일한 고대문서인 히브리전승(구약)을 경전으로만 볼 것인가, 역사 속 경전으로 볼 것인가? 번민에 늘 빠지고는 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개방된 생각을 가졌던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궁켈(Hermann Gunkel), 폰 라드(Gerhard von Rad), 노트(Martin Noth), 존 브라이트(John Bright),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등 히브리전승 연구가와 현대신학자들에게 빚을 졌다.
“이 글은 창작이다. 히브리전승을 기초로 썼다. 세 푼(分)은 전승의 내용과 일치하며, 칠 푼은 허구다. 하등비평(성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는 본문비평 방법)과 고등비평(성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역사적으로 재해석하는 양식비평 방법)을 병행하여 집필했다.”
나보다 더 슬픈 영혼에게 이 글을 바친다.
2024년 가을 - 서문
인간 다윗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다윗 주변에 일어난 사건들이 사실이라면, 구름 위에서가 아니고, 인간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잖는가? 그 역사의 땅을 다윗과 함께 밟고 싶었다.
다윗을 소개한 유일한 고대문서인 히브리전승(구약)을 경전으로만 볼 것인가, 역사 속 경전으로 볼 것인가? 번민에 늘 빠지고는 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개방된 생각을 가졌던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궁켈(Hermann Gunkel), 폰 라드(Gerhard von Rad), 노트(Martin Noth), 존 브라이트(John Bright),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등 히브리전승 연구가와 현대신학자들에게 빚을 졌다.
“이 글은 창작이다. 히브리전승을 기초로 썼다. 세 푼(分)은 전승의 내용과 일치하며, 칠 푼은 허구다. 하등비평(성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는 본문비평 방법)과 고등비평(성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역사적으로 재해석하는 양식비평 방법)을 병행하여 집필했다.”
나보다 더 슬픈 영혼에게 이 글을 바친다.
2024년 가을 - 서문
어김없이 계절은 흐르고 또 하나의 새로움이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그동안의 낙서와 같은 글들을 한권의 책으로 준비하면서 새로운 시작과 과거의 정리를 한번에 실행해 봅니다.
사랑과 사람. 그 사람들과의 관계들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 하면서 저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느끼고 그 느낌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부족함이 많은 글들이지만 사랑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을 아시는 모든 분들 예쁜 그림을 그려준 소진이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애.인.에게 하늘과 바다와 푸름에게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독자들은 성서에 쓰여진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이스라엘이 위치한 근동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마치 천상天上에서 벌어진 일인양 여기는 상반된 시각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한국인의 성경 해석은 신학을 눈 감기고, 문자적으로 직해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신학이 길이라면, 신앙은 힘이다. 신학의 눈을 감기면 맹인이 길을 가는 것과 같다.
한 해, 하루, 촌각의 시간에 따라 모든 분야가 진보하고 발달하는데, 고대 중세 시각에 머물 뿐 전혀 변하지 않는 분야가 한국의 성경 해석이다. 세계적으로 이미 현대신학은 발달했고, 진전되어 있다. 단지 우리가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성서 문자주의에 갇혀 새로운 이론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진리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