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까?
필자가《자치통감》과 씨름해 온 지도 벌써 40년이 되었으니《자치통감》은 필자 인생의 동반자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방대한 분량의 《자치통감》을 한글로 완역하였고, 《자치통감》을 통하여 중국사를 보는 시각을 다룬 몇 권의 책으로도 출간하였다. 때로는 강의를 통하여 《자치통감》을 이야기했으며,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자치통감》의 원문을 읽는 작업도 진행해 왔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치통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역사책이라고 하면 사마천의 《사기》가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사기》는 인물 중심의 기전체로 엮여 있어 마치 위인전을 보는 것과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에 비하여 사마광이 편년체로 엮은《자치통감》은 인간과 사건, 시간으로 얽힌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역사 교과서로서의 《자치통감》을 말하면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을 자주 인용한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기 전에 먼저《자치통감》에 훈의를 달면서, 이 책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각 도에 엄명을 내려 《자치통감》을 인쇄하기 위한 30만권의 종이를 마련하게 했다. 자신이 여러 번 탐독하였기에 그 깊이를 익히 아는 《자치통감》을 조정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부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기 위해서였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통독했던《자치통감》의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몽골의 쿠빌라이도 중원으로 들어와 원 왕조를 세우면서《자치통감》을 몽골어로 번역했다. 유목 생활을 하던 몽골족의 칸 쿠빌라이가 농경 국가인 중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것도《자치통감》을 통하여 중원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 그뿐인가. 가장 놀라운 일은 신 중국을 탄생시킨 마오쩌둥이《자치통감》을 17번이나 통독했다는 사실이다. 최종 학력이 호남제일사범학교 졸업인 마오쩌둥은 청나라 이후 근 100여 년간 분열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던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따라서 그는 학교 공부보다《자치통감》을 더 많이 읽었을 것이고, 그의 지략과 혜안의 원천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은 평소에 청나라 말기의 이름난 역사학자인 왕명성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천지간에 없어서는 안 될 책이《자치통감》이며, 공부하는 사람이 반드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 바로《자치통감》이다.”
또한 마오쩌둥이《자치통감》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중국의 군사 전략가는 반드시 정치가는 아니다. 그러나 걸출한 정치가는 대부분 군사 전략가이다. 중국에서 왕조가 바뀌거나 시대가 바뀔 때 군사 전략을 모른다면 무슨 방법으로 정치를 하겠는가? 특히 전환기에서의 정치는 대부분 군사력에 의하여 좌우된다. 천하를 가지지 않고서는 천하를 공격하지 못하며, 천하를 가지고서야 천하를 지킬 수 있다.
어떤 사람이《좌전》을 거론하면서 ‘서로 죽이고 죽는 책’이라고 했는데, 《자치통감》 속에 나오는 전쟁에 비한다면《좌전》의 내용은 아주 단편적인 것일 뿐이다.《자치통감》에는 벤다는 말은 없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말 그대로 서로 베고 베이는 일을 기록한 위대한 책이다.”
이와 같은 말을 통하여 고졸 학력의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비결을 엿볼 수 있다. 그는《자치통감》을 통하여 인간의 역사를 꿰뚫어 본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사란 서로를 짓밟으며 죽고 죽이는 일상을 헤엄쳐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총을 쏘고 칼을 휘둘러 사람의 목숨을 직접 끊는 전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권력자나 돈을 물 쓰듯 써 재끼던 재벌들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패잔병 신세가 된 것이다. 아이들은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지고, 젊은이들은 일할 곳을 찾아 부초처럼 떠돈다. 이것이 서로를 베고 베이는 시대가 아니고 무엇이며, 《자치통감》 속에서 반복되는 난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치통감》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인간사의 양태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저마다의 나침반을 하나씩 얻을 수 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난하더라도 도중에 포기하거나 실패를 반복하는 일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베고 베이는 세월 속에서 살아남아 역사의 주인공의 된 세종대왕도, 쿠빌라이도, 마오쩌둥도 《자치통감》으로부터 선물 받은 자신만의 나침반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가치 때문에 그동안 《자치통감》에 손을 댄 사람은 무척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선뜻 《자치통감》의 책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원본의 방대함이 거대한 태산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역사를 기전체로 다룬 1,600권의 역사책을 294권에 정제해 놓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완독에 도전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자치통감》을 좀 더 쉽고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필자에게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러던 차에 몇 년 전 모 신문사에서 매달 한 편씩 간략하게《자치통감》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어 매달《자치통감》 한 권에서 한 사건씩 골라 연재할 기회가 생겼다. 한 사건이《자치통감》 한 권 전체를 대표하는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독자의 격려를 받으면서 《자치통감 294》를 펴낼 동기를 부여받게 되었다.
때마침 주한 중국 문화원에서 ‘《자치통감》을 통한 중국 문화의 이해’라는 주제로 10회의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이때 청강하신 분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어서 필자 또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강의의 말미에 이어지는 질의문답을 통하여《자치통감》의 내용을 간단히 다룬 입문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미《자치통감》의 입문서 격으로 펴낸 바 있었던《자치통감 산책》을 수정 보완하고, 모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과 아직 게재하지 않은 부분의 원고를 만들어《자치통감》 권1에서부터《자치통감》 권294에 이르기까지 매 권마다 하나의 사건을 골라 아주 짧고 평이하게 기술한《자치통감 294》를 펴내게 되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 긴 역사의 숨결이 담겨 있는《자치통감 294》를 통하여 독자 여러분들께서 ‘베고 베이는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는 나침반을 하나씩 거두시기를 기원한다.
《자치통감》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까?
필자가《자치통감》과 씨름해 온 지도 벌써 40년이 되었으니《자치통감》은 필자 인생의 동반자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방대한 분량의 《자치통감》을 한글로 완역하였고, 《자치통감》을 통하여 중국사를 보는 시각을 다룬 몇 권의 책으로도 출간하였다. 때로는 강의를 통하여 《자치통감》을 이야기했으며,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자치통감》의 원문을 읽는 작업도 진행해 왔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치통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역사책이라고 하면 사마천의 《사기》가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사기》는 인물 중심의 기전체로 엮여 있어 마치 위인전을 보는 것과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에 비하여 사마광이 편년체로 엮은《자치통감》은 인간과 사건, 시간으로 얽힌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역사 교과서로서의 《자치통감》을 말하면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을 자주 인용한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기 전에 먼저《자치통감》에 훈의를 달면서, 이 책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각 도에 엄명을 내려 《자치통감》을 인쇄하기 위한 30만권의 종이를 마련하게 했다. 자신이 여러 번 탐독하였기에 그 깊이를 익히 아는 《자치통감》을 조정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부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기 위해서였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통독했던《자치통감》의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몽골의 쿠빌라이도 중원으로 들어와 원 왕조를 세우면서《자치통감》을 몽골어로 번역했다. 유목 생활을 하던 몽골족의 칸 쿠빌라이가 농경 국가인 중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것도《자치통감》을 통하여 중원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 그뿐인가. 가장 놀라운 일은 신 중국을 탄생시킨 마오쩌둥이《자치통감》을 17번이나 통독했다는 사실이다. 최종 학력이 호남제일사범학교 졸업인 마오쩌둥은 청나라 이후 근 100여 년간 분열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던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따라서 그는 학교 공부보다《자치통감》을 더 많이 읽었을 것이고, 그의 지략과 혜안의 원천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은 평소에 청나라 말기의 이름난 역사학자인 왕명성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천지간에 없어서는 안 될 책이《자치통감》이며, 공부하는 사람이 반드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 바로《자치통감》이다.”
또한 마오쩌둥이《자치통감》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중국의 군사 전략가는 반드시 정치가는 아니다. 그러나 걸출한 정치가는 대부분 군사 전략가이다. 중국에서 왕조가 바뀌거나 시대가 바뀔 때 군사 전략을 모른다면 무슨 방법으로 정치를 하겠는가? 특히 전환기에서의 정치는 대부분 군사력에 의하여 좌우된다. 천하를 가지지 않고서는 천하를 공격하지 못하며, 천하를 가지고서야 천하를 지킬 수 있다.
어떤 사람이《좌전》을 거론하면서 ‘서로 죽이고 죽는 책’이라고 했는데, 《자치통감》 속에 나오는 전쟁에 비한다면《좌전》의 내용은 아주 단편적인 것일 뿐이다.《자치통감》에는 벤다는 말은 없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말 그대로 서로 베고 베이는 일을 기록한 위대한 책이다.”
이와 같은 말을 통하여 고졸 학력의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비결을 엿볼 수 있다. 그는《자치통감》을 통하여 인간의 역사를 꿰뚫어 본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사란 서로를 짓밟으며 죽고 죽이는 일상을 헤엄쳐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총을 쏘고 칼을 휘둘러 사람의 목숨을 직접 끊는 전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권력자나 돈을 물 쓰듯 써 재끼던 재벌들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패잔병 신세가 된 것이다. 아이들은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지고, 젊은이들은 일할 곳을 찾아 부초처럼 떠돈다. 이것이 서로를 베고 베이는 시대가 아니고 무엇이며, 《자치통감》 속에서 반복되는 난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치통감》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인간사의 양태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저마다의 나침반을 하나씩 얻을 수 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난하더라도 도중에 포기하거나 실패를 반복하는 일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베고 베이는 세월 속에서 살아남아 역사의 주인공의 된 세종대왕도, 쿠빌라이도, 마오쩌둥도 《자치통감》으로부터 선물 받은 자신만의 나침반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가치 때문에 그동안 《자치통감》에 손을 댄 사람은 무척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선뜻 《자치통감》의 책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원본의 방대함이 거대한 태산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역사를 기전체로 다룬 1,600권의 역사책을 294권에 정제해 놓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완독에 도전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자치통감》을 좀 더 쉽고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필자에게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러던 차에 몇 년 전 모 신문사에서 매달 한 편씩 간략하게《자치통감》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어 매달《자치통감》 한 권에서 한 사건씩 골라 연재할 기회가 생겼다. 한 사건이《자치통감》 한 권 전체를 대표하는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독자의 격려를 받으면서 《자치통감 294》를 펴낼 동기를 부여받게 되었다.
때마침 주한 중국 문화원에서 ‘《자치통감》을 통한 중국 문화의 이해’라는 주제로 10회의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이때 청강하신 분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어서 필자 또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강의의 말미에 이어지는 질의문답을 통하여《자치통감》의 내용을 간단히 다룬 입문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미《자치통감》의 입문서 격으로 펴낸 바 있었던《자치통감 산책》을 수정 보완하고, 모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과 아직 게재하지 않은 부분의 원고를 만들어《자치통감》 권1에서부터《자치통감》 권294에 이르기까지 매 권마다 하나의 사건을 골라 아주 짧고 평이하게 기술한《자치통감 294》를 펴내게 되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 긴 역사의 숨결이 담겨 있는《자치통감 294》를 통하여 독자 여러분들께서 ‘베고 베이는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는 나침반을 하나씩 거두시기를 기원한다.
《자치통감》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까?
필자가《자치통감》과 씨름해 온 지도 벌써 40년이 되었으니《자치통감》은 필자 인생의 동반자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방대한 분량의 《자치통감》을 한글로 완역하였고, 《자치통감》을 통하여 중국사를 보는 시각을 다룬 몇 권의 책으로도 출간하였다. 때로는 강의를 통하여 《자치통감》을 이야기했으며,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자치통감》의 원문을 읽는 작업도 진행해 왔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치통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역사책이라고 하면 사마천의 《사기》가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사기》는 인물 중심의 기전체로 엮여 있어 마치 위인전을 보는 것과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에 비하여 사마광이 편년체로 엮은《자치통감》은 인간과 사건, 시간으로 얽힌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역사 교과서로서의 《자치통감》을 말하면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을 자주 인용한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기 전에 먼저《자치통감》에 훈의를 달면서, 이 책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각 도에 엄명을 내려 《자치통감》을 인쇄하기 위한 30만권의 종이를 마련하게 했다. 자신이 여러 번 탐독하였기에 그 깊이를 익히 아는 《자치통감》을 조정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부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기 위해서였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통독했던《자치통감》의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몽골의 쿠빌라이도 중원으로 들어와 원 왕조를 세우면서《자치통감》을 몽골어로 번역했다. 유목 생활을 하던 몽골족의 칸 쿠빌라이가 농경 국가인 중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것도《자치통감》을 통하여 중원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 그뿐인가. 가장 놀라운 일은 신 중국을 탄생시킨 마오쩌둥이《자치통감》을 17번이나 통독했다는 사실이다. 최종 학력이 호남제일사범학교 졸업인 마오쩌둥은 청나라 이후 근 100여 년간 분열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던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따라서 그는 학교 공부보다《자치통감》을 더 많이 읽었을 것이고, 그의 지략과 혜안의 원천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은 평소에 청나라 말기의 이름난 역사학자인 왕명성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천지간에 없어서는 안 될 책이《자치통감》이며, 공부하는 사람이 반드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 바로《자치통감》이다.”
또한 마오쩌둥이《자치통감》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중국의 군사 전략가는 반드시 정치가는 아니다. 그러나 걸출한 정치가는 대부분 군사 전략가이다. 중국에서 왕조가 바뀌거나 시대가 바뀔 때 군사 전략을 모른다면 무슨 방법으로 정치를 하겠는가? 특히 전환기에서의 정치는 대부분 군사력에 의하여 좌우된다. 천하를 가지지 않고서는 천하를 공격하지 못하며, 천하를 가지고서야 천하를 지킬 수 있다.
어떤 사람이《좌전》을 거론하면서 ‘서로 죽이고 죽는 책’이라고 했는데, 《자치통감》 속에 나오는 전쟁에 비한다면《좌전》의 내용은 아주 단편적인 것일 뿐이다.《자치통감》에는 벤다는 말은 없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말 그대로 서로 베고 베이는 일을 기록한 위대한 책이다.”
이와 같은 말을 통하여 고졸 학력의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비결을 엿볼 수 있다. 그는《자치통감》을 통하여 인간의 역사를 꿰뚫어 본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사란 서로를 짓밟으며 죽고 죽이는 일상을 헤엄쳐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총을 쏘고 칼을 휘둘러 사람의 목숨을 직접 끊는 전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권력자나 돈을 물 쓰듯 써 재끼던 재벌들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패잔병 신세가 된 것이다. 아이들은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지고, 젊은이들은 일할 곳을 찾아 부초처럼 떠돈다. 이것이 서로를 베고 베이는 시대가 아니고 무엇이며, 《자치통감》 속에서 반복되는 난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치통감》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인간사의 양태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저마다의 나침반을 하나씩 얻을 수 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난하더라도 도중에 포기하거나 실패를 반복하는 일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베고 베이는 세월 속에서 살아남아 역사의 주인공의 된 세종대왕도, 쿠빌라이도, 마오쩌둥도 《자치통감》으로부터 선물 받은 자신만의 나침반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가치 때문에 그동안 《자치통감》에 손을 댄 사람은 무척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선뜻 《자치통감》의 책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원본의 방대함이 거대한 태산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역사를 기전체로 다룬 1,600권의 역사책을 294권에 정제해 놓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완독에 도전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자치통감》을 좀 더 쉽고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필자에게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러던 차에 몇 년 전 모 신문사에서 매달 한 편씩 간략하게《자치통감》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어 매달《자치통감》 한 권에서 한 사건씩 골라 연재할 기회가 생겼다. 한 사건이《자치통감》 한 권 전체를 대표하는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독자의 격려를 받으면서 《자치통감 294》를 펴낼 동기를 부여받게 되었다.
때마침 주한 중국 문화원에서 ‘《자치통감》을 통한 중국 문화의 이해’라는 주제로 10회의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이때 청강하신 분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어서 필자 또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강의의 말미에 이어지는 질의문답을 통하여《자치통감》의 내용을 간단히 다룬 입문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미《자치통감》의 입문서 격으로 펴낸 바 있었던《자치통감 산책》을 수정 보완하고, 모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과 아직 게재하지 않은 부분의 원고를 만들어《자치통감》 권1에서부터《자치통감》 권294에 이르기까지 매 권마다 하나의 사건을 골라 아주 짧고 평이하게 기술한《자치통감 294》를 펴내게 되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 긴 역사의 숨결이 담겨 있는《자치통감 294》를 통하여 독자 여러분들께서 ‘베고 베이는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는 나침반을 하나씩 거두시기를 기원한다.
“석가모니가 불교를 만들려고 했는가? 예수가 기독교를 만들려고 했는가? 이 분들은 종교, 사상, 인종, 상하 등등을 따지지 않고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베풀었을 터인데, 그 분들의 그 정신을 그대로 이었다면 그 분들을 추종한다는 사람들은 종교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그런데 진푸티종스는 이러한 종교와 종파를 뛰어 넘어 자비를 실천하고 있었다. 높은 강단 위에 앉아서 말로 자비를 베풀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아무런 경계를 두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이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 권중달의 옮긴이 말 중에서
“석가모니가 불교를 만들려고 했는가? 예수가 기독교를 만들려고 했는가? 이 분들은 종교, 사상, 인종, 상하 등등을 따지지 않고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베풀었을 터인데, 그 분들의 그 정신을 그대로 이었다면 그 분들을 추종한다는 사람들은 종교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그런데 진푸티종스는 이러한 종교와 종파를 뛰어 넘어 자비를 실천하고 있었다. 높은 강단 위에 앉아서 말로 자비를 베풀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아무런 경계를 두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이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권기환님의 서평 감사합니다. 자치통감의 역주자인 권중달입니다. 자치통감을 통해 본 전국시대의 인간상을 잘 꿰뚫어 말씀 하신 것은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 오자 문제는 저도 잘 알고 있으며 지금 수정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후속으로 도서출판 '푸른역사'에서 전한시대 부분(권9-38: 유방에서 왕망까지)을 이달 말까지는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쉬운 단어와 자세한 역주 그리고 사진과 지도도 붙였습니다.
저는 독자와 함께 이 거대한 고전을 역주해 나가려고 합니다. 독자의 귀중한 의견은 바로 후속하여 출간하는 책에 반영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2001년 12월 2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먼저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라
이 책은 자치통감의 행간에 숨긴 것을 끄집어내어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려는 ‘자치통감행간읽기’의 세 번째 책이다. 이번에는 《자치통감》의 전편 가운데 시대별로 한명씩을 선택하여 7개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 사람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평이하게 서술하였다.
그 이야기를 통하여 죽고 죽이는 살벌한 생존경쟁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대처하면서 살아남으려고 했는지 그 방법을 살펴본 것이다. 이러한 과거에 인간이 살아온 모습 속에서 오늘날을 사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당면하고 있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의 방법을 발견하거나 혹은 감계(鑑戒)를 발견해 보려고 한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해 묵은 논쟁이지만, 필자는 과거나 오늘날이나 인간이 추우면 옷 입고, 배고프면 밥 먹어야 하는 본성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데 착안하였다. 옷을 얻고, 밥을 얻는 방법 즉 문명이 바뀐 것이지 밥 먹고 옷 입는 것이 바뀐 것은 아닌 이상 역사에서 충분히 감계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서 우리의 지난 100년의 역사는 당장 밥을 해결해야하는 고난의 시절을 겪으면서 내 배를 먼저 채우는 것이 제일이라는 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그것이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절실하고 올바른 교육으로 이해되었지만 얼마 후 그 배고픔이 해결되고 나서는 나의 평화는 나 혼자 배부른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났을 때에는 이미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 들어 있었다.
사실 역사학은 인문학에 속하는 문학, 철학과 함께 인간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를 탐구하는 것이지만 지난 100년간 우리는 이것을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하여 이른 바 ‘비실용학문’이라고 이름 붙여서 타기해왔다. 그 결과 나타나는 사회적인 무질서와 혼란은 강압적인 법치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게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인문학은 비실용적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역사도 당장 밥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비실용학문으로 분류해 놓고 역사를 읽거나 교육하는데 너무도 소홀하였다. 역사를 읽으면 이러한 지혜가 자연적으로 생겨날 터인데 이를 도외시 한 것이다. 또 기껏 역사교육이라는 것이 연도나 사람의 이름, 제도명을 외우는 것쯤으로 생각하게 하였으니 그것은 너무도 유치한 역사교육이었다.
필자는 대중이 역사책에 가까이 가고, 역사공부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고, 역사책은 참고용 도서가 아닌 읽히는 것으로 된다면 그 속에서 세상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찾아 낼 수가 있다고 믿는다. 만약에 그러하다면 역사학은 비실용학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백년 천년을 내다보는 실용학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미 3년 전에 《자치통감》을 완역하였다. 그러나 역사교육이 역사 사건 외우기 교육에 매몰된 탓에 원전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것이 ‘자치통감행간읽기’이다. 이것은 논문점수에 매몰된 많은 전문학자들의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답적 이론으로 쓴 논문과는 다르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읽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도록 꾸미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역사책 읽기 운동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으로 역사읽기가 좀 더 보편화되고 활성화 된다면 지난 100년간의 잘 못된 교육을 어느 정도 교정할 수 있고,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장기적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은 작업을 통하여 조금씩이나마 사회를 구하는 결과를 가져 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순수함에서 나온 최고 권력자와 대결했던 용기
2013년 5월 13일 자 우리나라 신문에 ‘중국 반체제 물리학자인 팡리즈(方勵之)의 사후 자서전이 지난 3일 홍콩에서 출간됐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5일 보도했다.’는 아주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그것도 책이 출간된 지 10일이 지난 다음에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고, 그 밑바탕에는 팡리즈가 우리와 별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일 터이다. 그런데 역자는 이 기사를 보자 바로 이 책을 보아야겠고,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우리나라에 꼭 소개해야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역자는 이미 1987년에 팡리즈의 연설문집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가 타이완에서 출간되었을 때에 읽을 기회를 가졌는데, 이 연설집이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우리나라에도 한참 민주화의 열풍이 불고 있었고, 드디어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6·29를 끌어내는 우리 역사에 최초로 대중의 힘으로 권력자를 굴복시킨 그 시기였다. 그렇기에 팡리즈의 연설문은 바로 우리 사회에 적용하여도 틀림없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여건이 맞지 않아서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를 소개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의 자서전이 나왔으니까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판권을 확보하고 번역하여 소개하려는 결심을 굳혔다.
왜 팡리즈에게 그리 열망하는가? 그는 순수한 학자다. 그러기 때문에 학문적 연구의 욕구가 누구보다 강했다. 그런데,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제약을 받게 되자 중학교 때 이미 공산당 조직에 가담하였던 그가 오히려 공산당의 정책에 반대하게 된다. 공산당 조직에 가담한 것도 대중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고, 공산당의 정책에 반대한 것도 대중의 잘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중국 현대사에서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제기하였던 ‘과학과 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가치를 이은 사람이 된 것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덕(德, 데모크라시) 선생과 새(賽, 사이언스) 선생’의 문제는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문제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 계승자가 바로 팡리즈였으니, 그를 빼놓고 중국 현대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하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이러한 중국 현대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 나라라는데 더욱 절실한 것이다.
우리는 이웃하고 있는 나라에 독재자가 나타났을 때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 도요토미가 일본열도를 통일하고 권력을 장악하였을 때나, 도조 정부가 독재 권력을 장악했을 때에 이웃인 우리를 침략했다. 중국에서는 한 무제가 독재권을 장악하자 흉노 정벌과 고조선 침략이 있었고, 수나라가 중국을 400년 만에 통일하고 그 여력은 고구려 침략으로 나타났으며, 당 태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이웃나라 독재자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실패하였지만, 그들이 실패했다고 하여 우리가 입은 손해가 보상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는 실패한 원인을 검토하면서 독재 시스템에서 찾고 있었다.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히 과거 그 시절처럼 우리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웃을 통제하는데 기여하기보다는 이웃의 상황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우리의 생명과 관계된 일이다. 그래서 역자는 이웃에서 정책 결정의 시스템이 독재적으로 결정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통 팡리즈는 소련의 반체제 작가 사하로프에 비견되기는 하지만, 팡리즈에 대하여 더 깊이 관심을 가져야 되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가까운 이웃인 중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도 가까이 있는 나라 중국의 민주화 여부는 우리의 사활과 관계가 있는데, 그렇다면 민주와 자유 운동의 계승자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가 주목해야 할 인물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이다.
그러나 팡리즈에게 붙여진 이름을 보면 그의 전기는 당연히 심각하고, 비장할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그의 일생 자체가 너무 극적인 요소를 많이 갖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는 한편의 파란만장한 대하소설을 보는 느낌이었다. 중국이라는 관료체계 속에 있는 사회에서 일개 교수가 완리 부총리라는 최고 권력자와 대중 앞에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그렇고, 시청 앞에서 밤늦게까지 연좌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교정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의 전개와 반전도 그러하다. 최고의 권력자 덩샤오핑과 맞서며 민주와 자유를 쟁취하려는 장면이 또 그렇다.
뿐만 아니다. 그는 늘 너무도 심각한 상황을 만나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서술하면서 심각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미소 짓게 하는 위트로 넘어가고 있다. 우선 13개월여를 미국대사관으로 피난생활을 끝내고 중국을 떠나는 긴장된 순간을 “12시 40분 우리는 순조롭게 비행기에 올랐다. …… 중국정부는 미국 전용기에 중국 최대의 범죄자를 태워 보냈다. 황당한 일이라고? 세상은 본래 황당한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써나갔다. 너무 시니컬하다.
또 그가 미국대사관에 있었던 기록을 하면서 “384일 10시간 30분”이라고 분까지 기록했다. 그가 과학자여서 정확한 것을 생명으로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말이 역자에게는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다가왔다.
또 정치가가 우중(愚衆)을 이용하는 모습을 염두에 두었는지 프랑스 대성당을 보면서 ‘데마고기’를 떠올린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아무리 우중이라도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비록 우중이 잘못 선택한다손 치더라고 그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중은 점점 더 깨달아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부르짖은 사람 가운데 상당한 많은 사람이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서 있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 후 그들의 정치행태를 통하여 전에 부르짖은 함성은 그냥 자기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행위는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을 갖게 했다. 그러기에 설혹 정의나 민주를 순수하게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자기 입지와 이익을 위한 정치적 행위로 보게 만들었다.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사회가 순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비(非) 순수 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팡리즈같이 순수한 학자이고, 순수한 민주·자유 운동가를 접하면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난다. 미국 대통령의 손님으로 미국대사관에 가서 13개월을 산 사람이었지만 미국 대통령을 이용하여 특권을 누리려고 한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교수가 되어서도 손수 이삿짐을 날라야 했던 사람이었다. 팡리즈는 자신의 책 한 권을 무단으로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기를 비난하였던, 류샤오보의 중국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순수한 사람이었다.
또 팡리즈는 끝까지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과 대결한다. 덩샤오핑이 죽고 나서 에즈라 보겔이 쓴 《덩샤오핑의 고친 중국》이라는 덩샤오핑의 평전을 보고 그는 덩샤오핑의 성과라는 것 뒤에 숨겨진 비밀을 서평으로 발표함으로써 죽은 자와 대결하기도 한다. 그는 여기에서 보겔이 남(인민)의 공로를 가로채다가 권력자(덩샤오핑)에게 주는 전기 기록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은 팡리즈를 자기 통치의 방향에 방해가 된다고 파문했던 덩샤오핑도, 파문을 당하면서도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잘못 된 것이라고 지적한 팡리즈, 두 사람은 이미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이만한 지식인과 이만한 대결구도는 두고두고 흥밋거리이며 연구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우리 출판계의 상황에서 본다면 이 책을 출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나 학계에 필요하다면 내야한다는 생각이고, 아무리 어려워도 꼭 필요하다면 출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격려해 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에 힘을 얻는다. 따라서 이 책 《팡리즈 자서전》의 출판은 바로 그분들의 공로이다.
삼가 독자 여러분의 질정을 기다립니다.
2016년 8월 8일
역자를 대표하여
권 중 달 삼가 씀
황제제도를 통한 현대사회의 메커니즘
지난 2011년 역사학대회에서였다. 몇몇 역사학 교수들이 한담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선거이야기가 나왔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몇 개월 앞에 둔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에 어떤 학자가 막스 베버의 논문을 말하면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분석한 결과 제3의 인물이 당선되는 경우를 설명했다. 평소에 가장 유력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던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아니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던 의외의 인물이 당선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거도 그러한 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매우 흥미 있게 들었다. 여기에서 필자는 전통적인 황제제도를 가진 왕조의 역사에서 어떤 사람이 후임 황제로 결정되는가를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찬찬히 이에 관한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동아시아 역사에서 황제는 절대권을 가진 존재였다. 물론 당대當代를 지탱하는 법률도 있었고, 사회윤리도 있었지만 황제가 이를 어긴다고 해도 이를 효과적으로 제한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에는 이른바 제왕학(帝王學)이 생겨나고 황제가 될 사람을 교육시켜서 ‘백성을 하늘처럼 아는 황제’를 만들기에 노력했지만 이러한 교육이 언제나 효과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그만큼 황제가 가지고 있는 권력은 막대했다. 그래서 이를 하늘의 아들이라는 말로 ‘천자(天子)’라고 호칭했던 것이다.
황제제도는 진(秦)의 시황제(始皇帝)에서 시작되어 청말(淸末)에 신해혁명이 일어나 폐지될 때까지 2천년이 훨씬 넘는 동안 단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는 넓은 중원 땅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동아시아 중원 대륙의 주변에 있는 나라들도 모두 이 황제제도를 모방한 정치제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크게 말해 근세 이전까지 2천년 동안 변하지 않는 동아시아의 정치제도였다.
비록 황제를 정점으로 한 가운데에 여러 제도들이 신설과 소멸을 반복했다고 하지만 황제제도와 황제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렇듯 황제제도는 동아시아 정치제도의 핵심이다.(중략)
사실 하나의 왕조를 살펴보면 황제가 실제로 황제권을 행사하면서 왕조를 통치한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도리어 황제 이외의 사람이 실질적으로 황제의 권한을 행사한 기간이 오히려 길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제는 황제가 아니라 황제를 뽑는 사람 혹은 그 세력들이 어떤 기준으로 황제를 뽑으려고 했는지 그 메커니즘을 보려 하는 것이다. 예컨대 황태후는 나이 어린 황제를 골라서 수렴청정을 오래하기를 기도한다. 무장 세력이 황제를 뽑을 때에는 자기가 황제로 가는 길의 디딤돌로 이용할 사람을 뽑는다. 환관들도 자기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 사람을 선택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살펴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메커니즘은 권력의 최고 자리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대 사회는 국민이 투표에 참여하여 최고 권력자를 뽑는다. 그러나 그 지지 세력과 이른바 ‘킹메이커’ 역시 겉으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울 테지만 내면적으로는 중신이나 황태후, 환관, 무장 세력처럼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는데 이 책이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들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