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살 골목에 머물러 있다. 그늘과 햇빛의 조각들, 식구 수만큼 낡아진 대문과 제각각인 살림들, 골목 끝과 모든 시작이 궁금하다. 군중 속 외로움과 남산 수사실에서의 외로움이 썩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보통강 버들과 삼지연 개박달나무, 그 색다름이 우리 집 뒷산 봄날 진달래로 반복되어 핀다는 것도 안다. 권력의 바깥과 안 역시 미완성인 목소리들의 높낮이 향연일 뿐이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 모두 무덤덤하게 평범해진다. 무척 아련하다. 여전히 골목을 서성일 수밖에 없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
2022년 6월
신동호
삶은 자주 시와 엇박자를 냈다. 시로 모든 걸 말하려다가 시를 잃었다. 시가 멀어져가면서 꼭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십 수 년 동안 평양과 개성, 금강산과 중국을 다녔다. 그나마 시적 상상력이 허용되는 공간이 있어 다행이었다. 익숙한 낯섦, 그 의외의 곳에서 시가 돌아왔다.
고등학교 문예부 시절 나는 노화남, 최종남, 최돈선 세 분 선생님의 그늘에서 시를 썼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거리를 떠도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이승훈, 이건청, 김용범, 박상천 네 분 선생님의 은혜 아래에서 시를 붙잡았다.
문학으로 보답할밖에 없다.
생명이 생명의 상처를 아물게 할 터이지만 슬픔이 언제 잦아질지 잘 모르겠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적 받은 광주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났지 싶었는데 너무 아픈 봄을 지났다. 지상의 꿈을 수탈(收奪)당한 세월호의 아이들과 그 또래들에게 이 시집으로 사과하고 싶다.
시를 쓰면서 늘 내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았는데 유독 어머니에겐 죄송했다.
작지만 위로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