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담(肉談)은 하위문화로 치부돼 오면서도 그 생명력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육담의 내용이 다소 부도덕하거나 성의 불평등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저의나 악의는 없다. 말하는 사람도 웃기려 하고, 듣는 사람도 그저 웃으며 일시적이나마 카타르시스를 얻으려는 것뿐이다.
일제강점기 무관 15인 약전을 내놓으며
이 책은 지난 7월까지 18회에 걸쳐 월간 《책과인생》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직전과 직후 일본 육사를 나온 무관 15명의 삶을 정리한 여러 편의 약전이다. 망국의 역사 위에 던져진 그들이 어떤 삶을 선택했는가를 공통 주제로 잡아 쓴 논픽션이다.
2016년 대한제국 무관학교 마지막 생도들의 생애를 추적한 장편소설 《마지막 무관생도들》을 출간했다. 그 직후에, 평소 인생의 사표(師表)로 존경해온 대학 선배 범우사 윤형두 회장님께서 소설적 허구를 뺀 사실 중심의 주요 인물들 약전을 《책과 인생》에 연재하라고 권유하셨다. 그리하여 연재가 끝나고 이제 책을 내는 보람을 안게 되었다. 작가로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행운인데다 명문 출판사 범우사 출간이라 기쁨이 크다.
젊은 독자들이 읽기 쉽게 수필체 스토리텔링 문장을 선택했으나 자료를 최고 가치로 삼고 조심스럽게 썼다. 약전의 대상들이 이 나라 근현대사의 중요인물이고 대부분 친일로 지목되었고 자녀들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1909년 망국의 길목으로 몰렸을 때, 이 나라에는 50명의 사관생도들이 있었다. 명문가 출신으로 총명과 열정과 용기를 겸비했던 그들은 학교가 폐교되고 순종황제의 명으로 일본으로 가서 사관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닥쳐온 강제합방, 그들은 일본에 순치당하지 않겠다고, 일본의 군사기술을 배워 일본을 물리치겠다고 결의했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는 10년 이상 자료를 수집했다. 얻은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모두가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으며 친일과 항일이라는 두 가지 길로 극명하게 갈렸고 친일이라는 타협과 굴종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었다. 둘째는 친일과 굴종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광복 후 창군의 주도권을 잡은 역사의 모순이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셋째는 그래도 끝까지 절조를 지킨 지사들이 있어서 이 나라 현대사가 덜 부끄럽다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삶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냉정하게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묻힌 진실을 밝혀내려 했다. 그러면서 민족에 대한 반역행위마저 우리 역사의 일부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썼다. 슬프지만 그들의 생애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15인이 생애 전반부에 같은 길을 걸은 터라 내용 중복이 있다. 개인 생애사의 완성도를 생각해 모두 잘라 내지 못했다. 모든 인물을 관통해 읽으시는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 책은 많은 분들의 도움이 바탕이 되었다. 10여 년 전 처음 자료를 수집할 때 나는 모교인 동국대에서 소설을 강의하고 있었다. 사학과 이기동 교수께서 기초자료를 주셔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독립운동사 전공 장세윤·이동언 박사는 내가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구해 주었다. 김경천 장군의 외증손녀인 김올가 선생과 박환 교수는 자료와 사진 수록을 허락해 주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이 책을 쓸 계기를 만들어주신 윤형두 회장님, 1년 반 동안 귀한 지면을 내놓아 15인 약전을 연재하게 해주고 좋은 책으로 꾸며 준 범우사의 윤재민 대표와 직원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린다.
2019년 여름 - 서문 - 책을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