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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이연철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23년 11월 <강릉 가는 배>

엘리사의 질투

엘리사는 영성에서나 기적을 행하는 데 있어서 스승 엘리야보다 두 배나 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엘리야와 달리 결국 이 땅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 묵상이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인간의 뿌리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방한했다. 마침 103위 성인에 관한 책을 출판한 한 시인으로부터 조선에 천주교가 소개되던 당시의 이야기를 비교적 소상히 들을 수 있었다. 이때 유방제 빠치피코 신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청나라출신의 사제로서 조선에 밀입국하여 복음의 씨앗을 퍼뜨리려던 빠치피꼬 신부는 한 젊은 과부와 일탈의 행동을 벌이고 만다. ‘믿음’ 그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던 시기-. 일반 신자들은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극한의 고통을 겪으며 죽음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고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판에 당시 조선 천주교의 최고 지도자격인 사제가 어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또한 오랫동안 신앙 훈련을 받았으며, 목숨을 걸고 눈 덮인 요동 벌판을 건너 밀입국한 처지가 아니던가? 그런 사제가 어찌 결코 걷지 말아야 할 길을 갔던 것일까? 왜? 유방제 빠치피꼬 신부는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처음에는 단순히 흥미를 가지고 그의 자료를 찾기 시작했으나 의외로 천주교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듣기가 어려웠다. 천주교는 ‘기록의 종교’다. 천주교만큼 기록을 잘 하는 종교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천주교 역사의 뒤편에 묻혀있었다. 그는 역사에서 ‘잊혀져야만 하는’ 인물이 된 것일까? 어렵게 찾아낸 자료에서 그의 원래 이름이 여항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세속의 이름마저 바뀌어 기록된 것이지만 어디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없었다. 마침 그해 신춘문예에 등단하여 문단에 이름을 올린 나는 의욕을 가지고 이 인물에 매달렸다. 쉽게 작품을 쓸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쓰고 지우기를 여러 번. 아마 서른 번도 넘게 고치지 않았을까. 거의 전부를 새로 쓴 경우도 있었다. 작가의 무능 탓이 크겠지만, 돌이켜 보면 그게 내 신앙의 길이기도 했다. 그런 중에 1994년에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3대 천재로 꼽히는 이가환과 여러 신자들의 신앙과 배교 과정을 다룬 장편소설 <배교일기>를 출간했으나 무언가 아쉬웠다. 그후 나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천주교와 믿음의 방법은 다르지만 믿음의 길은 그리 다르지 않다. 내 신앙의 깊이, 넓이 그리고 세월에 따라 글은 매번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그런 뜻에서 이 작품을 30년 작업의 결산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듯 하다. 또 펜을 들면 고칠 부분이 숱하게 드러날 테니까. 유방제 신부의 일탈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의 뿌리 탓에 그런 일을 저질렀고, 우리도 언제 그런 일을 저지를지 모르므로 다 이해하자는 말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릇된 행동을 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변명이 있다. 내 속에 어떤 아픔이 있어서 지금 그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고.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그러나 신앙의 길에서는 세상의 도덕보다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 탁월한 유대학자 아브라함 헤셀은 “종교 비판은 그 기본 주장뿐 아니라 그 종교가 밖으로 내놓는 모든 선언들까지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더 나아가 종교를 따르는 목회자와 신자들의 드러난 태도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의 기독교와 천주교가 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는 교리를 논하지 않았다. 믿음의 길을 강조했다. 한 배교자의 입을 통해 믿음의 길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늘이 준 길을 하늘 길이라고 하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늘 길을 걸을 때 태평성대가 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자꾸 걸으면 길이 생기는 줄 아는데, 천만에! 길은 하늘이 열어주는 것이며, 그게 진짜 길이요. 사람들은 빨리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길이란 그런 것이 아니요. 욕심이 큰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내서는 안 되는 곳에 길을 만들고, 서둘러 가려고 쭉 곧은 길을 냅니다. 길을 보면 그 나라 백성의 성품을 알 수 있소. 못된 백성은 빠른 길을 내고, 빠른 길만 찾지요. 길은 그런 게 아니요. 이리 휘고 저리 휘는 게 맞소. 길이란 휘휘 돌아가는 게 옳은 거요.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길, 길 아닌 길을 걸으면서 그게 옳다고 주장하지요. 인간이 만든 길은 필경 죽음의 길인데….” 인간의 나약함, 그 죄성….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유방제 신부를 마냥 비난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작품 마지막에 방점을 찍듯이 가상의 인물인 김인길 가를로의 배교를 짧게 언급했다. 많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유 신부나 정하상보다 김인길에게 더 정이 간다. 김인길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그래서 인간이다.”라고 중얼거린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간 누구에게나 악의 뿌리가 있으니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두둔하는 건 아니며 잘못을 옹호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배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오늘날 신앙인들의 자세 때문이다. 지금 당장 조선과 같은 어려움이 닥쳤다면 과연 죽음으로 자기 믿음을 지키려는 신앙인이 얼마나 될까? 누구보다 나 자신은? 온전한 신앙을 위해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유방제 빠치피꼬 신부를 비롯한 조선의 신앙인들 모습을 아픈 마음으로 그려본 것이 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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