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갈아도 바닥으로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흙과 돌이 아니라 어둠을 파내는 삽질로 날품을 팔았다. 더러 깨어지고 상처난 말들이 들판의 풀처럼 머리를 내미는 것이나 돌이켜보면 어느 것 하나 깎이고 다듬어진 것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시는 아니 오늘의 시는 이대로 온전한 화두 하나 세우지 못하고 하늘을 가른 담장 밑에서 숨죽인 풀꽃이어야만 하는가. 스스로 묻고 채찍질하면서 눈을 씻고 붓을 고쳐 잡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두려운 낱말묶음에 햇빛을 쬐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