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냥과 쌀톨이가 모처럼 집에 있네요. 그 덕에 쌀벌레 쌀톨이가 책벌레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어요. (저도 책벌레라 엄청 반가웠어요!)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아침냥은 친구가 책만 읽으니 심심해서 좀이 쑤셔 보여요. 그런데 마지막엔 아침냥도 책벌레가 되어 버렸네요! 눈 내리는 날, 난롯가에서 벌어질 만한 마법이잖아요?
창밖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난롯불은 빨갛게 피어올라 방 안이 한없이 아늑할 때, 책 읽는 모습보다 더 어울리는 모습이 또 있겠어요? 저 장면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 아니 책벌레라서 이 글을 옮기는 동안 정말 행복했답니다. 아침냥과 쌀톨이 옆에 의자 하나 갖다 놓고 내내 앉아 있었글을 있었는데 혹시 보신 분 계세요?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인간의 본능 속에는 파괴적인 성향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어른이 될수록, 사회화가 될수록 그것들을 다스리는 힘이 강해지는 것일 뿐입니다.
이 책에는 마법의 가면을 주워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반항심, 폭력성, 파괴적인 본능 같은 억눌린 것들을 발산하는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 속에서 곰이 되고 늑대가 되어, 억눌려 쌓여 있던 그러한 감정들을 털어 낼 수 있습니다. 죄의식이나 두려움 없이 말입니다. 그런 다음 애정 속에서 안전하게 자신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을 보며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스며들어 피와 살이 될 이야기도 필요하지만, 쏟아 놓고 털어 버릴 수 있는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도 아이들에게는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이 마법의 가면을 쓰고 잠시라도 마음껏 자신을 드러낼 시간을 갖게 해 주시고, 그런 다음 지쳐 돌아온 그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고 달래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드문 책이라고 여겨져 번역하는 마음이 더욱 각별했음을 덧붙입니다. - 옮긴이의 말
어른들은 은유와 상징으로 『어린 왕자』를 깊이 흡수하지만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와 이미지만으로 작품을 받아들이지요. 그런 아이들한테도 더 깊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라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집집마다 이미 있는 책이고, 다들 읽으신 책일 테지만 새롭게 태어난 이 책은 ‘어린 왕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또 다른 ‘몸’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그 정신을 흡수하였다 할지라도, 이 책은 소리 내어 읽고, 눈으로 감상하고, 손으로 어루만지며 곁에 두고 함께 할 새로운 몸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 새로운 몸이 아이들의 마음도 사로잡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손자가 있어요.
나는 우리 손자를 깊이 사랑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헤어지게 되겠지요.
함께 얼굴 보며 웃거나 손잡고 영화 보러 가지는 못하겠지요.
그런 날이 오면 바람이나 햇볕 속에, 달빛이나 물소리 속에
내가 스며 있다고 느껴 주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마음 다해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