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을 냈었다는 기억조차 못 하게 된 내게 <걷는사람>이 책을 다시 내겠다고 했다. 책 제목을 듣는 순간 칠순 나이의 소설가와 걸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으로 이유를 달아 사양했지만 결국… 이렇게, 됐다. 내 나이 삼·사십대, 성찰은 두렵고 분노는 깊고 욕망은 터지기 직전으로 살던 때, 더러 화염병을 던지는 기분으로 쓴 글들이다. 다시 그맘때의 젊음을 준다 해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교정지를 받아 보고, 문장이 거칠다는 걸 알았지만 수정하지는 않았다. 이건 다 그 시절의 내가 쓴 것이니까. 그걸 지금 ‘노년의 결’로 손본다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기특한 점도 발견됐다. 문장은 거칠어도 주제는 싱싱했다. 그 시대에 두 주먹 불끈 쥐고 지켜내고자 했던 것, 바이러스처럼 퍼뜨리려고, 굽히지 않았던 나의 씩씩함! 미숙하나마 ‘여성주의 관점’이 여전히 푸릇푸릇하게 돋보였다. 뜨거웠던 울분과 기특하고 애틋하기까지 한 신념도! (하하하)
이맘때의 나, 웃기는 일이 많았다. 남성 근본주의로 일관해서 흘러온 사람의 역사 속에서 여러 나라와 민족의 인권, 해방, 독립 등의 선언문을 읽으며 그 주체에 ‘여성’을 대체하는 버릇이 있었다. 가령, ‘조선’, ‘인민’, ‘노예’… 등등에 여성을 넣어 읽어보는 것이다. 이때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람남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보조자의 역할을 하는 게 ‘신의 섭리’ 같았다.(지금 달라졌나?) 가부장제의 남성 중심 결혼은 남자에게 아이를 낳아주고 밥을 해주는 존재로의 사람여성을 규정한 제도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여자도 사람이 되고자 하면 ‘이혼’만이 살길 같았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아버지 가장의 권력이라는 그늘로부터 시작해서 사회와 국가로 넓혀진다. 차별은 정교하게 장치되어 있다. 이런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어머니, 아내, 엄마, 누이, 딸을 둔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 우리들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공유하기 위해 표현하는 ‘말’들이 얼마나 폭력과 굴종으로 이루어졌는지, 그것이 바로 남성문화의 언어이다.
‘어머니 자연, 사람 어머니’에 대한 소외와 학대는 자연에선 인간중심주의, 사람에게선 남성중심주의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유행하는 자연 친화니 성차별금지니 하는 말들에서 문득 의문을 품는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처럼 우리가 ‘여 자얼굴 남자가면’을 하고 있진 않은지, 혹은 그 반대는 아닌지, 오늘날의 성평등 양상을 섬세하게 살펴봐야 한다.
여성은 여성고유성(固有性)으로 존중되는 사람일 때라야 여성이다. 지금, 발전과 진보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코로나19’가 우리 문명의 ‘몸체’에 대한 성찰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다.
자유롭지만 외롭고, 풍요롭지만 삭막한 시대를 살아내야 할 여성과 남성들에게 내 생각이 공유된다면! 그렇게 되기를 애달프게 바란다.
경자년 봄날에
언젠가 제가 쓴 장편소설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설가도 무당하고 비슷하네. 인간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게."
그런데도 저는 가끔가다가 문득 선생님께, 무당은 뭔가요? 묻곤 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거 한 가지야."
알을 깨도 나온다! 저는 순간 얼얼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알껍질을 깨는 병아리, 무당은 그런 고통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원고지 뒷장에 적어 책상 위에 붙여놓고 지냈었지요.
"무당은 인생의 길이 달라. 무당이 되기 전에 산 세월은 다 소용없고, 새로운 길을 가야 해. 먼저 산 거 보다 평탄하고 좋은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어떤 힘에 이끌려가는 길이야. 내 힘이 아니고 신의 위력으로 제3의 일, 기적 같은 일이 생겨. 그 힘을 느낄 때 기쁨과 긍지를 느끼고 자신감이 생기지. 평범한 사람으로 살던 것, 그 길이 바뀌는 거야."
자신을 용서하고 마침내 자신과 화해하기란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지, 희미한 진실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무서움과 두려움의 늪을 건너는 동안 작가도 손하영 때문에 참 많이 힘들었다. 무한대의 우주를 한 주발 밥그릇 안에 구겨넣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누군들 손하영이 아니 될 수 있을까 싶다. 거의 4년 동안 몇 차례나 새로 만들어진 손하영. 마침내 그가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섰다.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나는 이쯤에서 남성이 자기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가져보길 바란다.
남성우월주의는 남성에게 유익한가?
폭력성은 남성성의 본질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남성우월주의가 열등한 여성 집단 없이 존재할 수 있는가?
열등한 성이 여성이어야 한다면 남성의 고향은 열등감인가?
열등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고도 우월할 수 있는가?
과연 그런가?
남자를 묻는다.
한평생 수난과 모욕의 삶을 살아오면서도 끝끝내 나도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아 그 생명이 결코 주눅 들지 않은 어머니, 어떤 순간 '너희들이 내 엄마구나' 하고 속으로 눈물짓게 하던 딸들.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딸은 우리 모두의 추억이며 희망이다. 추억과 희망에 이 책을 바친다.
나 같은 소설가는 타인의 상처나 고통엔 민감하면서 그것을 어루만지고 함께하는 것엔 인색하니, 이해와 더불어 용서를 빈다. 소설가라는 직업이 있지도 않은 것을 더듬어대는 ‘눈먼 기술자’란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실제 삶에선 한없이 미숙하고 비굴하단 걸 고백하면 부끄러움이 덜어질까?
(……)
성옥아.
넌 사는 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산다는 것.
그것보다 더 소중한 이념이나 가치는 없다는 거, 이제 알지?
네가 직접 써준 시와 편지가 소설의 현실감을 살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 문득, 고맙다는 말이 구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맙다.
세상으로 나간 성옥.
사랑을 주고받으며 너그럽고 힘차게 살기를 바란다.
제1회 민중문학상을 받게 되어 한없이 기쁘다. 여러 가지로 완숙해야 할 시기에 접어들어 첫 번째로 선보인 장편소설 ≪순이≫가 그 대상인 것도 행복하다. 평생 쉬지 않고 소설을 써오면서, 내가 무슨 염치로 소설을 팔아 밥을 먹는가, 고민해왔다.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밥과 같은 소설>을 쓴다는 것이었다. 밥과 같은 소설은,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는 소설이다. 아직 미흡하다면, 그렇게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개정판 머리말
이런 책을 냈었다는 기억조차 못 하게 된 내게 <걷는사람>이 책을 다시 내겠다고 했다. 책 제목을 듣는 순간 칠순 나이의 소설가와 걸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으로 이유를 달아 사양했지만 결국… 이렇게, 됐다. 내 나이 삼·사십대, 성찰은 두렵고 분노는 깊고 욕망은 터지기 직전으로 살던 때, 더러 화염병을 던지는 기분으로 쓴 글들이다. 다시 그맘때의 젊음을 준다 해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교정지를 받아 보고, 문장이 거칠다는 걸 알았지만 수정하지는 않았다. 이건 다 그 시절의 내가 쓴 것이니까. 그걸 지금 ‘노년의 결’로 손본다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기특한 점도 발견됐다. 문장은 거칠어도 주제는 싱싱했다. 그 시대에 두 주먹 불끈 쥐고 지켜내고자 했던 것, 바이러스처럼 퍼뜨리려고, 굽히지 않았던 나의 씩씩함! 미숙하나마 ‘여성주의 관점’이 여전히 푸릇푸릇하게 돋보였다. 뜨거웠던 울분과 기특하고 애틋하기까지 한 신념도! (하하하)
이맘때의 나, 웃기는 일이 많았다. 남성 근본주의로 일관해서 흘러온 사람의 역사 속에서 여러 나라와 민족의 인권, 해방, 독립 등의 선언문을 읽으며 그 주체에 ‘여성’을 대체하는 버릇이 있었다. 가령, ‘조선’, ‘인민’, ‘노예’… 등등에 여성을 넣어 읽어보는 것이다. 이때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람남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보조자의 역할을 하는 게 ‘신의 섭리’ 같았다.(지금 달라졌나?) 가부장제의 남성 중심 결혼은 남자에게 아이를 낳아주고 밥을 해주는 존재로의 사람여성을 규정한 제도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여자도 사람이 되고자 하면 ‘이혼’만이 살길 같았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아버지 가장의 권력이라는 그늘로부터 시작해서 사회와 국가로 넓혀진다. 차별은 정교하게 장치되어 있다. 이런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어머니, 아내, 엄마, 누이, 딸을 둔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 우리들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공유하기 위해 표현하는 ‘말’들이 얼마나 폭력과 굴종으로 이루어졌는지, 그것이 바로 남성문화의 언어이다.
‘어머니 자연, 사람 어머니’에 대한 소외와 학대는 자연에선 인간중심주의, 사람에게선 남성중심주의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유행하는 자연 친화니 성차별금지니 하는 말들에서 문득 의문을 품는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처럼 우리가 ‘여 자얼굴 남자가면’을 하고 있진 않은지, 혹은 그 반대는 아닌지, 오늘날의 성평등 양상을 섬세하게 살펴봐야 한다.
여성은 여성고유성(固有性)으로 존중되는 사람일 때라야 여성이다. 지금, 발전과 진보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코로나19’가 우리 문명의 ‘몸체’에 대한 성찰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다.
자유롭지만 외롭고, 풍요롭지만 삭막한 시대를 살아내야 할 여성과 남성들에게 내 생각이 공유된다면! 그렇게 되기를 애달프게 바란다.
경자년 봄날에
여성주의 연작소설 『절반의 실패』는 나에게 복잡한 영광과 오해를 안겨준 소설이다. 이 소설로 조롱과 응원을 한꺼번에 받던 날들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다. 다 괜찮다. 인생이란 게 그럴 테니까. 어쨌든 응원은 내게 불안감을 주었고 조롱은 문학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북돋웠다. 이제 나는 일흔세 살에 이른 늙은 소설가로, 『절반의 실패』를 돌아보면 마치 평생 돌봐야 할 아픈 자식 같기도, 소설가로서 내게 중심이 돼준 기둥 같기도 하다.
잘 믿기지 않겠지만 1980년대 내내 아니, 1948년 딸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 삶은 ‘절반의 실패’를 향해 운명처럼 달리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또 쓰러지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절반의 실패’는 소설가 이경자,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세대는 내 이름을 모르고 『절반의 실패』란 소설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그동안 내가 쓴 여러 소설이 절판(絶版)되었다. 소설의 절판이란 생명의 매장(埋葬)과 다르지 않다. 더러 누군가 『절반의 실패』를 거론한다. 나도 이 책만큼은 되살려내고 싶다는, 그리움 같은 소망을 가지긴 했다.
그런데 하필, 아주 작은 출판사, <걷는사람>이 『절반의 실패』를 살려내겠다고 나섰다. <걷는사람>은 내가 한없이 아끼고 무언가 돕고 싶은 후배들이 있는 곳. 새롭게 출간된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실망을 안기게 될까, 염려돼 정말 잠을 설칠 지경이다.
소설 쓰는 일도, 책의 편집과 출판을 진행하는 일도 결국 사랑.
부디 그 사랑으로 상처받지 않길!
경자년에
길음동 집에서 - 개정판 머리말
사람은 인연 따라 만나고 헤어진다. 그런 인연 중에 헤어지지 못하는 인연도 있다. 내 소설 <정은 늙지도 않아>의 주인공은 한 남자와 두 여자다. 그들의 인연이 살아내는 한평생을 일곱 개의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보았다. 마지막 장면을 쓰고 '끝'이라고 썼다. 꼭 끝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고도 주인공의 이런 독백으로 처리된 마지막 글귀에서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했다.
"이승의 삶은 짧은 꿈에 지나지 않으니."
이 소설을 쓰면서 한 가지 새로운 기쁨을 맛보았다. 사람들 인연의 밑뿌리가 보였을 때였다. 아마 나는 그런 걸 보게될 때의 놀라움과 새로워지는 앎 때문에 여전히 소설 쓰기에 매혹되나 보다.
어린 날 글을 쓸 땐 내가 '문학'을 한다는 게 좋았다. 물론 문학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고 그것을 그대로 썼다. 시도 되고 소설도 됐다. 그 시절 문학은 일탈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나를 비현실적이고 사회성 결여로 길들였다.
그 뒤엔 소설을 써서 불합리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능할 것 같았다. 소설가의 사회적 책무라고 주장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좀 더 나이를 먹은 뒤, 내가 줄기차게 소설을 쓰는 건 나 자신이 불행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불행을 잊으려고 소설 속으로 깊이 도망가는 내가 보였다.
지금은 외롭지 않으려고 소설을 쓴다. 소설 속의 인물들과 허물없이 소통하고 사랑한다.
이 소설은 내 청춘기의 한때, 내게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그 사건을 녹여서 물로 만들거나 말려서 증발시켜야 나의 내면이 조화를 이루고 평화를 찾을 것 같았다. 주인공 정환과 수영은 수십 년 동안 내게 갇혀서, 나는 그들에게 갇혀서 오래도록 자유롭지 못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을 때 이들을 소설로 한번 다뤄 봤다. 하지만 내가 도무지 정직할 수 없어서, 그 사건을 통찰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과 이별한다.
허전하고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