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써 보았다. 무모한 짓인 줄 알면서 일을 저질렀다.
왜겠나? 이제까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 서는 ‘시 쓰기’를 동경의 대상으로 여겨 이를 향한 ‘해바라기 같은 욕구’가 늘 안달을 하고 있었다. 모른 체하던 그 동안의
태도는 ‘나 자신에 대한 불충실’이라는 판단을 지울 수 없어 마침내 욕구를 따라 주었다.
이유 하나 더 있다. 지난날의 선비들 특히 성리학자들은 시 쓰기를 그들 나름의 ‘수양 공부’의 하나로 삼았다. 그 ‘마음닦기’ 수양 공부를 도외시 한 것 또한 나의 불찰이고 결함이 라는 ‘자기 성찰’이 이에 작용했다.
공부라는 변을 앞세우다 보니, 시 쓰기를 ‘철학하기의 한방법’으로 여긴 셈이 되었다. 그 점에서 이 시들은 순수하지 못하다 할지 모르겠는데, 나의 저 불찰과 결함을 새삼 바로 잡고 보완하기로 시작한 결행이어서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모든 시에서 ‘서투름’이 많이 드러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그 서투른 노력이나마 기울이지 않는 태도보다는 낫지 않을지? 도전이라는 뜻을 함유한 ‘일 저지름’ 어휘를 사용한 이유가 바로 이런 데도 있다.
문외한의 졸작으로 말미암아 문학계나 철학계에 누가 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주책도 가지가지라는 힐난을 예상하니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많은 질정과 편달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옆에서 이 시 쓰기를 바라보며 처음부터 격려를 아끼지 않아 마침내 햇빛을 보게 한 고려대 서연호 명예교수, 강원대 최상익 명예교수를 비롯한 피정만 · 이상복 명예교수, 시인 김재숙
선생, 벗이자 출판인인 김유원 사장 등에게 마음 깊이 사의를 표한다.
2018년 정초에. 실상재에서
80을 넘긴 나이로 손댄 시 쓰기다.
시에 대해 깜깜인 채로 붓을 든 일은 “모르면 용감하다.”라는 속언처럼 한 짓이었다.
그러길 벌써 칠 년을 넘겼다.
한 줄기 감흥과 함께 만나는 시어들의 ‘아름다움’은 무엇에도 견주기 어려운 축복이라는 감만은 잡았다.
이십 대 중반부터 ‘글쟁이’ 소리를 들어온 처지.
글쟁이에게 시 쓰기는 늘 해오던 ‘글 다루기’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것이겠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