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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유홍종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서울

직업:소설가

기타: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최근작
2024년 7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어리석음>

명성황후

나는 이 책에서 명성황후가 고종의 왕비가 되면서부터 시해되기까지 권력투쟁과 외세의 임책, 특히 일본의 조선침략 과정을 중점적으로 추적해서 썼으며 명성황후의 시해 배후가 일본의 국가권력의 범죄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새롭게 읽는 김대건 이야기

하느님 안에 숨겨진 분 저는 김대건신부가 살았던 25년간의 짧은 순교의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문득 성서의 콜로새서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은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돌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김대건신부님은 평생을 하느님만 돌보면서 사셨습니다. 그 분은 조선 양떼들의 목자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면서 하느님의 위대한 종이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하느님께서 마침내 그를 선택하셨기에 일찍이 그리스도의 위대한 종으로서 목숨을 이미 내놓으셨습니다. 그 분의 목숨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었기에 오직 저 위만 바라보고 사셨던 것입니다. 김대건신부님의 생애를 살펴보는 동안, 저는 그 분의 하느님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타고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마치면서 김대건신부님에게 평생 신앙의 교부였으며, 영적 지도자였고, 진정한 삶의 동반자였던 페레올주교님이 하신 한 마디 말씀으로 제 슬픈 마음을 위로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순교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천국의 영광을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깊은 슬픔을 겨우 위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똑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조선 최초의 김대건신부가 순교로 뿌린 하느님의 사랑은 그 씨앗이 싹 트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조선교회는 마치 고린토 성서의 말씀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에도 억눌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난관에도 절망하지 않았고, 어떤 박해에도 버림받지 않았으며,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섭니다.」 김대건신부는 1857년 9월23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가경자의 칭호를 받았고, 1925년 7월5일에 성인위에 오르셨습니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매년 7월5일을 성 김대건신부의 축일로 정하고, 그 날이 되면 교우들은 김대건신부님을 위한 기도와 묵상을 합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앵베르주교가 교황청에 보고한 조선교우의 수는 1만여 명이었지만, 2012년 12월31일 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공식 발표한 한국의 천주교인은 총 5백36만1천3백69명으로 총인구 5천만 대비 당 10.3%라는 큰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는 한국인 사제가 4천5백78명, 외국인신부가 1백76명, 본당은 1천6백64여 개가 들어섰고, 공소만도 7백96 곳에 이르고 있습니다. 김대건신부는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내려다보고 계실 것입니다. 천주교인들의 씨를 말리려고 했던 수많은 조선시대의 천주교 박해자들의 시도는 속절없이 역사의 그늘로 묻히고 사라졌지만, 지금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우람한 거목으로 이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인도의 성녀 테레사 수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하느님만 남는다.』

새롭게 읽는 명성황후 이야기

... 나는 바로 그 보석들을 하나씩 핀셋으로 뽑아내 실로 꿰는 역할을 했지만 정말 이 책이 보석이 되었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나는 이 책에서 명성황후가 고종의 왕비가 되면서부터 시해되기까지 권력투쟁과 외세의 임책, 특히 일본의 조선침략 과정을 중점적으로 추적해서 썼으며 명성황후의 시해 배후가 일본의 국가권력의 범죄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슬픈 쁘띠의 노래

은빛연어들의 추억에 바친다 내가 오래 전 네덜란드에 갔을 때 튤립과 풍차의 나라 국민들이 한국에 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소녀합창단 리틀엔젤스, 그리고 입양고아의 나라 세 단어밖에는 없었다. 그때 나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두 나라에만 무려 6천여 명의 한국 입양고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것은 훗날 한국 입양아 출신의 레이든대학 교수를 만나‘서울에서의 외로운 몽상’이라는 소설을 쓴 계기가 되었다. 부모를 찾기 위해 서울에 온 소설의 주인공 레오는 안개 자욱한 서울을 내려다보며 T.S. 엘리엇의 시‘황무지’의 첫 구절처럼 잔인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린다.‘4월은 가장 잔인한 달/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추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오랜 망각의 겨울잠에 빠졌던 레오에게 모국이라는 현실은 잔인한 슬픔의 황무지를 연상시킬 뿐이었다. 그 후 30여 년이 흐른 지난 해 나는 뉴욕에서 네덜란드의 레오와 똑같은 해외입양아의 운명과 만났다. 그날 우리는 교포청년들과 함께 맨해튼의 코리아타운 한 바에서 TV중계로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월드컵 예선전을 보면서 응원전을 펼쳤는데, 우리와 함께‘오! 필승 코리아’‘대∼한민국!’을 외친 한 여자의 고백은 오랜 가수면 상태에 빠져있던 나의 창작 욕구에 불을 질렀다. 세계적인 무역 강국이자 한류문화대국을 자처하고 있는 한국은 지금도 해마다 1천여 명의 어린이들을 해외에 입양시키고 있다. 내가 그 당시 네덜란드에서 목격했던 비극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현실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뉴욕에서 내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모티브이다. 우랄 알타이어계의 몽고반점을 가진, 미국에서 콧대 높은 조선왕조의 공주처럼 자란 이 소설의 주인공 지니. 그녀는 기적적으로 친엄마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엄마는 지니에게‘진희야, 내가 엄마여서 너무너무 미안해!’라고 말한다. 이산과 입양의 이중 고통을 모질게 견뎌내는 이들 모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그녀가 끝내 은빛연어처럼 귀향의 꿈을 이루고, 떳떳한 한국인 이진희의 이름으로 복원되면서 끝난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한반도의 분단으로 빚어진 이산가족의 고통과 해외 입양고아의 깊은 슬픔을 함께 성찰해보고 싶었다. 아울러 지니의 기나긴 사랑과 미움의 세월을 함께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내 소설들의 모티브가 되었던 암스테르담의 레오, 브뤼셀의 베르띠에, 비엔나의 장 루불리에, 그리고 뉴욕의 지니를 비롯한 전 세계의 입양아들을 우리가 꼬옥 끌어안고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저들이 진심으로 모국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끝으로 이 소설을 쓰는데 큰 영감과 모티브를 준 미국의 앤 까뜨린느 여사와 그녀의 쁘띠, 그리고 어려운 소설의 시대에 이 책을 기꺼이 펴내주신 출판사 소이연에 특별히 감사드린다.

유리열쇠

유리열쇠는 누구나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그리고 한 번 마음의 문을 열면 깨져서 다시는 못 쓰게 되는 첫사랑의 열쇠를 뜻한다. 그처럼 소중한 열쇠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그 열쇠를 쓰지 말고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하기를 바란다.

하얼빈 리포트

이 소설은 대한의군 특전사 지휘관 안중근 참모중장이 그 시기에 안창호 선생의 구국 비밀결사단 신민회가 항일 독립전쟁을 선포하면서 우리 민족의 주적 리스트 첫 번째에 올린 일본의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타격하기 위한 하얼빈 작전을 그린 작품이다. 그간 안중근 관련 자료들은 주로 일본 측 역사 문헌을 위주로 편향되어 왔지만, 이 소설은 다양한 해외자료들은 물론 외부 유출이 금지되었다가 최근 개방된 러시아의 역사문서들 속에서 발굴된 새로운 안중근 관련 자료들을 참고하여 쓸 수 있었다. 그 시기에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박탈하고 본격적인 식민 통치를 시작했다. 그런 국난의 위기에서 안중근 의사는 만주 경영에 나선 이토에 대한 하얼빈 작전을 감행한다. 마침내 하얼빈의 하늘에 울린 세 발의 총성은 한민족의 불굴의 저항정신과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드높인 감동적인 메시지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우리 국민들이 이토의 총칼에 쓰러졌으며, 억압과 채찍에 숨죽여 살았던가. 안중근 의사는 꽉 막혔던 겨레의 숨통을 툭 터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혼의 맥락을 이어준 기념비적인 업적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를 넘긴 지금도 하얼빈 공원(현재 자오린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나 죽거든 하얼빈공원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는 날, 조국 땅에 이장해주길 바라네.” 하얼빈 거사 전에 그가 동지들에게 남긴 유언이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나는 그가 일본 검찰에게 한 말을 떠올리면서 이 글을 마친다. “저는 이토에 대한 사적 감정이나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제 의지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집필을 적극 지원해 주신 ㈜비센미디어 이형모 회장, 그리고 우리에게 민족의 영웅을 이 시대에 다시 기릴 수 있도록 출판을 기획해 주신 안중근 의사의 직계 증손이자, ㈜비센바이오 안창기 회장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2020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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