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을 돌아보며
어언 칠순까지 살아왔다는게 실감나지 않는다. 마음과 세월은 같이 가지 않고 따로따로 흐르는 것 같다. 세월은 흘러도 마음은 여전히 젊음이 넘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은 늘 청춘’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가 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나온 세월이 생각만큼 그리 짧지는 않는 듯싶다. 지난 세월이 번개처럼 지나갔지만, 많은 희로애락 속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것 같다.
글이라고 해봐야 어린 시절 편지를 써 본게 전부인 나에게 지난 세월의 흔적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일이란 참으로 어려운 모험이고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행여 저명 인사들을 흉내내는 일은 아닌지 무척 조심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지난 세월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기억나는 대로 살아온 이야기와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용기를 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서로 다른 개성과 모양대로 살아간다. 개중에는 길은 다르지만 어떻게 해야 인생을 잘 사는 것인지 흔적을 남기고 떠난 분들이 많다. 내가 존경한 인물들을 거론하자면, 정치인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그분들의 삶의 발자취는 우리 정치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분들로서 평생 존경하고 있다.
경제인으로서는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현대 창업주를 꼽는다. 이분들은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을 경제선진국으로 이끈 주역들로서 국민의 경제적 삶의 질을 높여준 영웅들이다. 종교와 문화 분야에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박춘석 작곡가를 꼽을 수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역사에 큰영향을 끼친 이분들은 개인적인 작은 욕망을 위해 세상을 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고 후세에게 큰 유산을 남긴 훌륭한 분들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계의 권위와 명예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빈자와 소외층과 함께했으며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청빈한 삶을 귀감으로 남겼다. 법정 스님은 부처님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자신의 문학적 재능까지도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준 철저한 무소유의 실천자였다. 한편 박춘석 작곡가는 해방 후 민족의 애환을 오선지에 그려 국민 모두가 함께 울고 웃는 수많은 곡들을 발표하는 등 국민과 더불어 살았던 진정한 예술인이었다.
그런데 나의 지난 삶은 어떤가? 이 분들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지만 그래도 거목의 삶을 닮으려 노력했던 것은 틀림없다. 이분들이 남긴 삶의 영향은 수만 킬로미터에 달하는데 비해 나의 그림자는 고작 단 1미터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래도 한 자락이라도 남기고 떠나가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내 평생의 신념은 ‘정직’이다.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우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일이다. 소소한 일에도 거짓없이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지나친 사심(私心)은 화를 자초하고 양심을 외면해 결국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그 사심으로 자신이 이득을 취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보게 돼 있다. 그래서 정직하게 살고자 노력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부정적인 마음의 뿌리는 그리 깊지 않다. 조금만 생각하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무엇이 정직한 것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속 깊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부정직한 마음은 얕지만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은 그 마음이 깊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양심이 그리 깊지 않으면서도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헛되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을 때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인간이 정직하게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칠십 평생을 살면서 어떻게든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했다. 또 정직하게 살지 못했을 때는 후회와 반성할 일들을 솔직히 고백하고 ‘정직’이라는 제 자리를 찾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이 회고록에는 그러한 노력들과 함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이 후손들에게는 삶을 살아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지인들에게는 그동안 함께 했던 일들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랄뿐이다.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