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궐하는 전염병과
생사의 기로에서 아득한 시간이 지나갔다.
떠돌다 머물면 몸은 병들고
삶은 더 아득해지는 것일까?
세상에는 온통 내려앉는 것 천지다
꽃잎 지는 봄부터 눈 내리는 겨울까지
결국은 흘러갈 것이고
마침내는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나는 다만 그 자리에서 그저 나무처럼 서 있을 뿐이다.
몸이 아프고 나서 짐을 꾸리는 대신 꽃을 키우기 시작했다.
내 짐 보따리에서는 상사화가 피고, 수선화가 돋고, 바람이 불어왔다.
그냥 뜻 없이 앉아 있어도 구름이 산 너머에서 흘러와 봉우리 저편으로 지나갔다.
내 시간들도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리라.
머문다는 말의 이면에는 늘 떠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세상 모든 존재는 ‘천천히 떠나기’ 위해 서 있을 뿐이다.
바람이 분다, 또 한 시절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