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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저자 > 희곡

이름: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성별:남성

국적:유럽 > 중유럽 > 영국

출생:1564년, 영국 잉글랜드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황소자리)

사망:1616년

직업:극작가 시인

최근작
2024년 12월 <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 Shakespeare, Memory of Sentences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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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폴란드의 셰익스피어 학자 얀 코트(Jan Kott)가 생각난다. 그는 『셰익스피어는 우리들의 동시대인��이라는 책을 써서 전 세계 연극인들과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사람이다. <리어 왕>과 <한여름 밤의 꿈>의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어서 현대 연극사에 새 장을 연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의 업적도 얀 코트의 이론적 뒷받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얀 코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방대하고 웅장하고 어려워서 접근하기 힘들어 보이는 세계문화의 유산 셰익스피어를 우리 곁으로 가깝게 끌어온 재능 때문에 그 빛나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우리 동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었다. 그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딱딱한 학술 강연보다는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을 더 좋아했다. 남대문시장의 사람들, 활력, 그 벌거벗은 삶의 소용돌이에 도취되어 떠날 줄 몰랐다. 셰익스피어가 다룬 드라마는 그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언제나 국경을 초월해서 우리 주변에 손에 잡힐 듯이 깔려 있었다. 그가 한 말 가운데서 흥미로운 것은 빅토르 위고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위고는 1850년대 말 채널 아일랜드에 유배당한 적이 있다. 위고는 아들과 함께 어느 겨울날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그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아들도 절망적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번 유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위고는 대답했다. “오래 걸릴 것이다.”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지내시겠어요?” 아들의 질문이다. “바다를 보면서 지내겠다. 너는 뭘 할래?” 위고는 궁금했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하지요.” 아들의 답변이었다. 위고의 아들은 나중에 유명한 셰익스피어 번역가가 되었다. 얀 코트가 전해준 이 에피소드에서 내가 강하게 느낀 것은,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 위고를 껴안아준 바다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불운했던 정치적 유배는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그 바다는 지금도 영원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변하고 있다. 각자의 현실도 변하고 있다. 위고의 현실도 변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위고가 유배된 현실 속에서는 그의 동시대인이었다. 내가 전란 중에 포탄 속에서 읽었던 셰익스피어는 나의 동시대인이었고, 나의 암담했던 현실을 비춰보는 거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시간과 나의 현실, 이 두 시간이 서로 밀접한 정신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면 셰익스피어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동시대인이 될 수 있다.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비극 세계는 선과 악이 혈투를 벌이는 무대입니다. 햄릿은 클로디어스와 대결합니다. 리어왕은 고네릴과 리건과 대결합니다. 에드거는 에드먼드와 대결합니다. 이아고는 오셀로와 대결합니다. 맥베스는 덩컨 스코틀랜드 왕과 대결합니다. 코델리아는 왜 죽어야 합니까. 데스데모나는 왜 죽어야 합니까? 리어왕, 햄릿, 오셀로, 덩컨은 왜 그렇게 죽어야 합니까? 글로스터 백작은 왜 두 눈을 빼앗겼습니까? 거트루드는 왜 독약을 마셔야 했습니까?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전쟁은 계속됩니다. 악이 선을 제압하고, 악은 자멸합니다. 세상은 말세의 혼란이요 황무지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문명의 황야 속에서 펜을 들었습니다. 그는 역사와 대결합니다. 그는 악의 근절을 위해, 평화와 질서를 위해 싸웁니다. 그의 작품은 악에 대한 저항의 선언이요, 절실한 기도요 통곡입니다. 비극을 읽고 참담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비극이 주는 정화작용, 카타르시스(Katharsis) 때문입니다. 비극은 인간의 마음에 건강한 효과를 미친다는 것입니다. “연민과 공포를 통해 감정을 정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병적인 정서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요소가 됩니다. 우리는 비극을 통해 비극적 인물과 그 상황에 동화되면서 자기중심적인 몰입에서 차츰 벗어나 ‘외부’로 자신의 존재가 확산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정(同情)을 통한 영혼의 확대는 심리적이며 도덕적인 건강에 이롭게 작용합니다. 비극이 인간 생활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비극의 수용자는 인식하게 되고, 우리의 통찰력은 고통을 극복하고 얻어지는 조화로운 정신적 안정을 모색하게 됩니다. 이때 도달되는 정화작용을 통해 정신은 새로운 삶의 인식에 도달합니다. 비극작품은 행동의 모방을 통해 동화작용을 일으키면서 개인의 영역을 벗어난 보편성(universality)을 얻게 됩니다. 비극작품은 질서와 조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수단이 됩니다. (중략) 기도와 자비심과 용서는 셰익스피어가 작품에서 남긴 유언의 ‘키워드’입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끝머리는 항상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등 비극의 주인공들이 겪은 환멸과 절망 너머로 인간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의 비극을 읽는 희열과 행복은 바로 이것입니다.

헨리 5세

셰익스피어 사극은 영국 왕조 시대 이야기입니다. 전쟁과 해외 원정이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면서 국민들은 폭력과 약탈, 기근과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존 왕> <리처드 2세> <헨리 4세>(2부작) <헨리 5세> <헨리 6세>(3부작), <리처드 3세> 등 영국 역사극은 반란과 폭동, 정치적 책략과 배신 등 왕권 쟁탈전이 되풀이되면서 평화와 질서가 유린되는 수난의 기록입니다.(중략) 왕자와 폴스타프의 대조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헨리 5세> 전편에서 거듭거듭 강조되는 헨리 왕의 원정 이야기와 2막 3장의 폴스타프 입종 장면입니다. 헨리 5세가 파죽지세로 프랑스를 쑥밭으로 만들고 있을 때, 폴스타프는 런던의 주막집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퀴클리는 폴스타프의 임종을 봅니다. 폴스타프는 “홑이불을 만지작거리면서 꽃을 따는 시늉을 하며 손끝으로 꽃을 따고 싱긋 웃었다”고 퀴클리는 전합니다. 폴스타프는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 하면서 숨을 거뒀습니다. 님 하사가 물었습니다. “술을 저주했다면서요?” 퀴클리는 응답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바돌프는 물었습니다. “여자도?” 퀴클리는 응답했습니다. “여자는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소년이 말했습니다. “저주했습니다. 여자는 악마의 화신(化身)이라고 말했습니다.” 퀴클리는 응수했습니다. “화신(化身)이 아니라 화신(花信)이다. 카네이션 꽃을 싫어했어.”(incarnate와 carnation을 병치하는 셰익스피어 특유의 언어 사용-역자 주) 헨리 5세는 계속해서 프랑스에 총을 내밀었습니다. 폴스타프는 꽃을 만지며 사랑과 평화를 몽상했습니다. 그는 파란만장의 유랑아였습니다. 반문화(anti-culture), 반기성질서(anti-establishment)를 부르짖으며‘ 총보다 꽃’을 주장한 1960년대 미국의 히피 문화를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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