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의 미로』를 발표한 지 27년 후에 나온 『알파벳의 발명』은 알파벳 역사학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범위와 접근법은 퍽 다르다. 전자가 알파벳 문자에서 자극받은 상상과 호기심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알파벳의 기원과 발전을 탐구하는 문자사의 역사를 더 폭넓게 다룬다. 또는 저자의 말을 빌리면 “『알파벳의 미로』는 시기별로 그래픽 형태로서 문자에 관해 알려지거나 가정된 바가 무엇이었는지 서술했다. 그러나 『알파벳의 발명』은 우리가 이 역사에 관해 아는 바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서술한다.”(11쪽) 그리고 이 ‘어떻게’에서 실증과학이 지배적 위상을 차지하기 전에—나아가 과학 시대 이후에도—종교와 정치 이념은 물론 문자 총람이나 사자 관행, 도표와 같은 시각 매체가 우리의 앎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알파벳의 기원과 역사를 구명하려는 시도는 매번 알파벳을 새롭게 ‘발명’한다. 우리의 앎은 앎의 대상을 얼마간 규정하며, 이는 앎의 근본 수단인 문자에도 적용된다.
이렇게 책을 만드는 저술가 조해나 드러커의 폭넓은 학문 세계를 숨가쁘게 개괄해 『알파벳의 발명』을 둘러싼 맥락을 간략히 그려 보았다. 한국어로는 옮긴이 중 한 명(최슬기)이 번역한 아티스트 북 『다이어그램처럼 글쓰기(Diagrammatic Writing)』(2019)에 이어 두 번째로, 본격 학술서로는 처음 소개되는 저자의 책이다. 텍스트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과 글자의 형태까지 고려하는 저자의 글을 번역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는 아마도 끝까지 알아낼 수 없을 숨은 의도를 짐작하거나 저자와 접촉해 일일이 확인하는 일을 포기하고 주어진 텍스트를 객관적 대상물로 해석하는 방법을 택했다. 아무튼 텍스트의 물성은 얼마간 텍스트의 자율성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저자도 이러한 선택이 터무니없다고 여기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한국어판에서 명백히 사라지거나 왜곡된 측면이 하나 있다. 알파벳 자모가 아니라 한글을 통해 전달되는 탓에, 이 책에서는 원서의 자기반영적 차원, 즉 알파벳에 관한 이야기를 알파벳으로 제시한다는 독특한 조건이 재현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지면에는 음소문자라는 점에서 알파벳이기도 하지만 다른 알파벳과 발생 계통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알파벳’이 아니기도 한 문자, 역사적 사실로도 발명되었고 개념적·은유적으로도 여러 차례 재발명된 문자가 있다. 이 독특한 문자가 글에 새로운 감각적 자질을 더해 상징적 차원을 보충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