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진정한 힘은 전쟁에 승리해 영역을 확장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타문화를 가진 종족을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이용했다는 데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한 힘이 성숙해 있었다는 것은 아니며, 항상 강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고구려는 유목민들과의 동업과 처절한 전쟁에 패해 왕이 연해주 부근까지 도망하는 경우도 있었고, 왕모와 수도의 사람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으며, 심각한 내분에 휩싸여 많은 영토를 잃고, 외국 사신에게 국왕이 구타당하는 비참함의 역사도 있었다.
이 책의 글들은 지난 1년간 국제신문에 연재된 것을 대폭 수정·보완한 것이다. 시장이라는 자궁에서 전쟁이 태어나는 모습을 동서양의 전쟁사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이데올로기 대립이 끝난 이후 지속되는 현재의 전쟁이 과거의 전쟁과 어떤 매커니즘을 공유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지난 10년간 전쟁 연구에 시간을 바쳐왔지만, 그것을 시장이라는 새로운 주제와 연관시키기 위해 나는 또 수많은 자료더미 속에서 헤매야 했다.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 지난 1년은 나에게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 시간은 앞으로도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머리말_'왜 전쟁과 시장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