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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어린이/유아

이름:하빈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6년,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

최근작
2023년 11월 <마지막 수업>

꼰대와 스마트폰

“요즘 젊은 것들, 뭘 생각하며 사는지 모르겠어. 맨날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고.” “어른들은 너무 꽉 막혔어. 말이 안 통해. 뻑 하면 꼰대질이나 하고.” 위의 두 문장을 읽고 눈치 빠른 독자는 내가 뭘 말하려는지 대충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갈등, 세대 간의 불통에 관해 얘기하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상한 옷(빈티지)이나 입고 요상한 노래(힙합)나 듣고 결혼은 선택이고 집보다 먼저 차를 사는 젊은 것들이 못마땅하고, 젊은이들은 변해버린 세상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만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며 뭘 모르면서 지적질이나 하는 어른들이 못마땅하다. 겉도는 두 세대의 거리는 아득해 보인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몸이 불통이면 동맥경화나 뇌졸중이 생기고, 노사가 불통이면 스트라이크나 사보타주가 생긴다. 작가와 독자가 불통이면 책장을 덮어버리고 정치가 불통이면 탄핵이 야기된다. 이번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특징은 지역도, 이념도 아닌 세대 간의 대결이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5000년 전 피라미드 유적에 새겨진 문구란다. 세대 차이는 어느 시대나 존재했던 보편적 현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 만에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버린 우리의 경우는 좀 심각하다. 얼마나 세상이 빨리 변하면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 차이가 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그러니 부모가 살았던 세상은 아득한 과거가 되어버리고 자식들이 사는 세상은 요지경같이 생소하다. 하여 늘 생각은 따로 놀고 대화는 겉돈다. 둘 사이의 벽은 이질감, 즉 동질성이 없기 때문에 생긴 갭이다. 상대를 설득하거나 이해하려면 먼저 상대를 알아야 한다. 상대를 알려면 상대의 세계에 들어가 보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나는 일흔이 넘었지만 젊은이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들의 세계를 조금은 안다. 내 경험을 매개로 두 세대의 간격을 좁혀보고자 하는 의도가 이 책의 주제이다. 내 글을 읽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내 글에 긍정적이고 수긍하는 편이었다. 옛날 얘기를 하더라도 결코 일방적이지 않아 설득력이 있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시니어들이 많은 글을 써왔다. 그런데 대부분은 과거에의 회상, 추억 등, 자기 세계에만 머물러 있거나 지나치게 현학적이어서 젊은이들에겐 어필하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사람들에게만 읽히는 한계를 가졌다. 아무쪼록 이 책이 상대를 들여다보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통로로 신·구가 오가며 눈도 맞추고 악수도 하면 좋겠다. 서문이 길어졌다. 독자는 벌써 글 읽기의 따분함에 지쳐갈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이 글을 접하는 독자에게 딱 한 가지만 부탁드리는 바이다. 각 부마다 세 편, 아니 한 편씩만이라도 우선 읽어달라는 것이다. 그래도 재미나 흥미가 없으면 사정없이 덮어버려도 좋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조건은 첫째 ‘재미있게’, 둘째 ‘세대 초월’, 셋째 ‘대중의 공감’이다. 대중문화는 말 그대로 다수의 민중이 향유하는 문화 일반이다. 그래서 글의 대부분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엮어나간다. 내 의도가 적중하여 이왕이면 “책장이 언제 넘어갔는지 모르게 다 읽었네.”라는 감상이 나오기를 꿈꾸며 이 책을 엮는다.

진짜 수업

나는 꽃이야, 아무렴 꽃이고말고. 그런데 왜 아무도 봐 주지 않는 거지? 개망초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조바심이 났다. “날 좀 봐 주세요.” 누가 보아 주지 않는다고 꽃이 꽃 아닐 리 없으련만 누구의 관심도 얻을 수 없었던 초라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개망초는 향기를 날리고 있었다. 자기가 꽃이란 걸 확인이라도 하듯 향기를 날려 보내고 있었다. 향기를 좀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길어 올려야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향기는 멀리 갔지만 꽃과 잎은 늘 파리했다. 아, 그렇구나, 개살구, 개떡, 개오동, 개꽃. 나는‘ 개’자가 붙은 개망초였구나! 개망초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았다. 게접스레 뻗어 올린 부스스한 가지마다 수없이 매달린 초라한 얼굴. 누가 심지 않아도 지천으로 피는 꽃. 무심결에 피었다가 바람결에 지고 마는, 이름마저 초라한 그런 꽃에 불과했다. 어느 날, 한 소녀가 개망초의 얼굴을 살며시 감싸 쥐며“ 개망초도 자세히 보니 예쁘네.” 하며 향기를 맡았다. 소녀의 한마디 속에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자기와 똑같이 생긴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노란 씨방은 태양처럼 빛나고 하얀 꽃잎은 백설처럼 눈부셨다. 작다는 것은 초라한 것이 아니었고, 많다는 것은 천한 것이 아니었다. “개망초도 자세히 보니 예쁘네.” 소녀의 한마디는 인식의 경계에 자리한 문이었다. 문 이쪽엔 절망과 원망과 어둠이 있었고, 문 저쪽엔 희망과 감사와 빛이 있었다. 개망초는 문을 열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는 개망초도 꽃이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었다.『(부산일보』 토요 에세이에 게재했던 저의 글「보이지 않는 유산」 중에서) 나에게 동시는 개망초의‘ 소녀’였습니다. 스스로 묻어 두었던 자부심이 당당하게 햇빛 속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설레었던 첫 시집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시집을 내게 되어 기쁨과 걱정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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