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 산책길에 나무 이름의 다양함은 물론이고 그 어감의 감칠맛에 거듭 놀라게 된다. 엇비슷한 모양새들이지만 이름 하나 하나를 되풀이 입저울질해보노라면 나무들이라는 것이 제각각의 우주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하여 그 이름들의 여운을 즐기는 재미야말로 산책의 대단한 절정이다.
시의 숲에는 수목원보다 적극적인 여운을 남기는 나무들이 더 풍성하다. 말하자면 그곳에는 보다 큰, 보다 유일한 우주들이 겹치고 부딪치고 있다는 말이다. 거기엔 등(燈)빛 같은 정신이 숨어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곳은 언제나 낯선 세계이다. 따라서 낯선 세계에서의 산책은 결코 성급해하지 말 일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술렁이며 깨어나는 수목원의 나무들처럼 시의 숲에서도 어느새 큰 숨쉬며 기지개할 듯이 나무들의 이름을 튼튼하게 불러주어야 하련만 내 발음은 꼼꼼하지 못하고 혀의 놀림은 잡다하다. 그러니 휘파람이나 기침으로라도 혹시 서툰 몸놀림으로라도 그것들을 불러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