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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가정/건강/요리/교육

이름:박서영(무루)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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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어떤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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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맥스의 비밀

세상의 많고 많은 고양이 그림책들 중 이 책이 지닌 특별함은 이것이 ‘어느 고양이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보다 특별한 것은 비밀이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밀을 비밀로 남겨둔다는 건 저마다의 삶을 경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기꺼이 삶의 미스터리를 즐기며 미지를 탐험하는 것이다. 한 마리의 고양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현실 속에서도 이야기 속에서도. 이건 비밀인데, 우리가 고양이를 통해 겪게 되는 온갖 신비로운 일들에 비하면 사실 이건 아주 작은 일일 뿐이다.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비올레타 로피스가 그린 마지막 다섯 장의 그림은 폐허에서 시작한다. 21세기 여자들은, 불행을 두려워하거나 운명에 순응하는 대신 망가진 집과 무너진 삶 위에서도 담담히 털고 일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나선다. 이야기를 다시 쓴다. 로피스의 그림은 이번에도 낯설다. 이전의 어떤 작업과도 겹치지 않는다.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카멜레온 같은 스타일 너머에 있다. 로피스의 그림은 언제나 글과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를 통해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어간다. 때로는 글을 압도하면서, 언제나 독자가 매혹될 수밖에 없는 세계를 펼친다. ―박서영(무루)

곰들의 정원

4월이면 지천에 작고 흰 별 모양의 꽃들이 핀다. 이름도 별꽃인 이 식물은 석죽과 별꽃속의 두해살이풀로, 길가에든 풀숲에든 저 홀로 피어나 잘도 자란다. 가꾸는 이 없이도 어디서나 자라는 풀을 잡초라 한다. 그러니 꼬마곰이 말하는 ‘진딧물도 별꽃도 없는 나의 정원’이란 아마도 이런 뜻이겠다. 벌레도 잡초도 생길 틈 없이 온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돌보는 정원. 혹은 이런 뜻일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정원. 이 특별한 정원에는 파피와 페페라는 이름의 두 세계가 혼재해 있다. 하나는 세심하고 단정한 질서의 세계다. 다른 하나는 흥과 낭만이 넘치는 감각의 세계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 독자는 알 길이 없다. 가족인지, 이웃인지, 친구인지, 혹은 연인인지. 그래서 좋다. 꼬마곰의 두 할아버지는 독자의 마음속에서 어떤 관계라도 될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두 사람의 삶이 그들의 털 색깔만큼이나 다르다는 것. 그 덕분에 꼬마곰은 각각의 방식으로 풍요로운 두 세계의 토양 모두에 깊게 뿌리내린 나무로 자란다. 두 가지 색 모두를 품고서. 정원의 모습으로 완성되는 생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한 아이가 자라고 있다. 생의 끝과 시작에 선 두 존재가 함께하는 순간은 찰나에 가깝다. 아이는 머잖아 정원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고 나면 진딧물도 별꽃도 없는 낙원 하나를 마음에 품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낙원 또한 잃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것들이 모여 아이가 만들 정원의 토양이 될 것이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길고 긴 시간의 매듭을 우리는 아마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바위와 소녀

합리를 열망하는 인간이 비합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모순 때문에 부조리라는 숙명을 짊어지게 되었다고 카뮈는 말했다. 부조리의 자각은, 어느 날 갑자기 주문한 적 없는 택배로 받게 된 거대한 바위처럼 예고 없이 당도한다. 이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든 바위를 떼어내려 분투하던 소녀가 바위와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절망의 밑바닥에 이르러서다. 고통의 근원이 때로는 자신을 지켜주고, 불운이 그랬듯 행운에도 인과가 없다는 것을 소녀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또한 세상은 온통 바위를 든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것도. 먼저 바위를 든 자에게서 얻는 호의와, 아직 들지 않은 자에게서 받는 연민이 아마도 소녀로 하여금 바위를 들고 살아가는 일을 보다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으리라. 고된 여정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소녀의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어쩌면 소녀는 카뮈가 말했던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 보게 되었을까. 기꺼이 형벌을 수행하는 자. 그 행위에 자부심을 느끼는 자. 부조리에 반항하는 자. 바위를 부정하거나 바위 때문에 체념하는 대신 소녀는 바위라는 모순을 직시하기로 했을까. 바위가 없는 시절로 돌아가는 것보다 저마다의 바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가져볼 수 있는 유일한 낙관이라고 여기게 되었을까. 고통의 자리에서 건네는 희망의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가 서로 저마다 등에 진 바위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려 애쓰고, 분투 끝에 앞으로 나아갈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때로 그것을 내 옆 사람에게 친절히 건네는 것. 삶의 의미가 이런 것에 있다면, 이런 일들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볼 수도 있을 것이다. 끝없이 바위를 밀고 올라가던 시지프가 한순간 산꼭대기에 멈춰 선 바위 앞에서 희미하게 웃어볼 수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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