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수수께끼이다. (…) 이 수수께끼는 돈의 강력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 힘의 ‘본질’에 관해 의문을 품지 않는 데에서 비롯한다. 돈의 기원과 본질을 ‘물물교환에서 선택된 사물’이라고 보는 주류 경제학의 설명에는 의문이 허락되지 않는다. 모두들 교과서에서 물물교환 과정에서 돈이 나온 사연을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에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동전이나 지폐라는 ‘사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주장이 파격적이고, 논리가 선명하며, 방법론도 분명한 저작이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곳에서 서평과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자유시장’ 사상을 거세게 내미는 여러 기관, 싱크 탱크, 개인들은 이미 곳곳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이런저런 반론을 내놓고 있다. 이 책은 긴 시간에 걸친 수많은 저작을 그것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루면서 정교한 논리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논쟁과 비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자로서 보자면, 이 글의 서두에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경제학에 애덤 스미스로 시작된 ‘과학혁명’이 있었던 것처럼 경제사상의 흐름을 이해하는 위험한 통념에 확실한 일격을 가한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하며 또 고맙게 여긴다. 온 세상이 지정학적 갈등 구조, 인플레이션과 금융시장 불안, 지구적 가치사슬의 변화, 생태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으로 지각변동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의 주장이 단순한 일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수리에 꽂는 일침과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10장에서 폴라니가 논의하고 있는 미국과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교육 제도의 차이, 그리고 그 각각이 그 나라의 사회 경제 체제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를 본다면, 과거제도와 문신 관료 체제를 천 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유지해온 이 동양 나라들에서 교육 제도가 자본주의 안착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또 17장에서 민주주의의 상이한 기원을 영국과 유럽의 중세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폴라니의 논의를 본다면, 동양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이(그런 것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민주주의는 어떠한 착종의 산물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4장과 15장에서의 고대 경제사와 일반 경제사에 대한 폴라니의 성찰을 읽다 보면 과연 동양에서의 고대 이래의 경제사는 어떠한 틀로 재구성되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