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가 편집 책임을 맡아 헤겔 철학의 각 분야별 전문가들의 논문들을 모아 출간한 《헤겔의 신화와 전설》은 실타래같이 얽힌 헤겔 철학의 난맥상을 풀어내는 데 적지 않은 학문적 기여를 하리라고 기대되는 책이다. 총 19명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한 본 논문집은 헤겔 철학과 관련하여 인식론, 형이상학, 정치철학, 역사철학 등 각각의 영역에서 쟁점이 되어 온 주제들을 묶어 헤겔과 관련된 각종 신화와 전설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확대되었으며 또 어떻게 견고화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 주고 있다. 따라서 저자들이 기대하고자 하는 이 책의 의도는 또 다른 헤겔, 새로운 헤겔, 진정한 헤겔 등 헤겔 철학의 진면목을 드러냄으로써 논쟁의 종지부를 찍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그간의 신화와 전설을 걷어내어 가급적 있는 그대로의 헤겔과 그의 사상을 선보임으로써 제대로 된 논쟁의 토대를 확보하려는 저자들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헤겔의 형이상학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지만 그의 정치철학은 아직도 유효하다든가, 헤겔의 철학체계는 다분히 반동적이지만 그의 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은 여전히 적실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부분과 전체, 내용과 형식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 가장 경계했던 사상가가 헤겔이지 않았던가! 따라서 저자들의 접근 방식은 철학적, 분석적, 역사적, 비교학적, 문헌학적, 어원학적 방식 등으로 다양하지만 그 기저에는 학적 체계에 따른 맥락적 이해라는 기본적 자세가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