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의 역사는 내일의 것이지만 나는 아직 잠들지 않은 나의 것이고 내가 뱉은 시들은 시집의 것이라고. 그러면 창밖의 저 하현은 누구의 것입니까? 모로 누워서 한쪽 어깨가 아픈 사람의 것입니까? 우리의 것입니까? 아직은 시가 되기 전의 그저 하현일 뿐입니다. 조금 더 서쪽으로 갔습니다.
길에 떨어져 터진 버찌들을 보면
올려다보지 않아도 내가 지금
벚나무 아래를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등뒤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면
돌아보지 않아도 그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다.
보리 추수는 이미 지났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오래다.
보리서리를 눈감아주시던 외할머니의
거룩한 삶이 대관령 아래에 있었다.
검은 흙 속에서
감자가 익으면 여름이라는 것을 알 듯
내 몸이 강릉에 가고 싶을 때가 많다.
강릉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다.
2018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