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일본에서 현재까지 여섯 권이 나왔다. 국내에 번역 출간되는 것은 세 번째 작품인 이 『가을꽃』이 아마도 마지막이 될 것 같다(혹, 미스터리처럼 강렬한 반전이 있을지도 모르니 속단은 금물이지만).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가을꽃』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주인공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적성에 맞게 출판사에 취직하고, 더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여전히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시리즈는 마감하지만 ‘나’의 인생에 응원을 보낸다. 더불어 우리의 인생에도!
고양이는 안는 것.
‘고양이’ 자리에 무엇을 넣어도 좋다. 아이를 넣어도 좋고, 부모를 넣어도 좋다. 연인을 넣어도 좋고, 강아지를 넣어도 좋다. 소중하고 아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어울린다. 소중하고 아끼는 것이라면, 머리로 이해하고 분석하려 하지 말고 안아주면 되는 것이다.
이 소설 『나의 계량스푼』을 마지막 장까지 읽은 독자라면 구제의 의미가 와 닿을 것이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나’와 ‘선생님’이 죄와 벌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올바른 결론을 내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자연스럽게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등장인물들과 독자의 어깨에 얹어 놓았던, 또는 얹혀 있던 무거운 짐을 말끔히 거둬 간다.
‘엔시 씨와 나’ 시리즈는 일상에 숨어 있는 인간의 악의를 들추지만 결국은 인간을 긍정하는 결말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작가의 사람됨과 상통한다고 할까. 그래서 본격 미스터리이지만 작품에서 작가가 느껴지고 진심이 전해진다.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심오하지만 무겁지 않다.
이 작품집의 마지막을 장식한 한 문장, “당신들과 헤어진 지 십여 년. 올해도 벚꽃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라는 문장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알리는 서막 혹은 예고 같은 느낌마저 든다. 앞으로 이 작품집의 어느 부분, 어느 이야기에서 또 다른 대작이 싹틀지 기대해봄직하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집의 구조를 도면을 그리듯 상세하게 설명하면서(참고로 작가의 아버지는 설계사무소를 운영해서 어려서부터 도면에 익숙했다고 한다) 집에 대해 품고 있는 원초적이고 막연한 두려움을 부추긴다. 다만 작가는 어릴 적 내 친구처럼 마지막에서 ‘확’ 놀래주지 않는다. 대신에 그 두려움을 ‘괜찮다’고 어루만져준다. 괜찮으니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한다. 어느 집에서나 사람은 죽고, 어느 집에나 사연은 있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그곳이 집이라고.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광란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광란 속인가 싶으면 어느새 현실로 되돌아와 있다. 논리에 연연할수록 진실에서 멀어지고 진실에 다가서는 순간 길을 잃을지니, 지나치게 의심하지도 말고 많이 생각하지도 말고 휘리릭 읽은 뒤 그저 앞에 기다리고 있을 망망대해를 한번 느껴보시길. 일독에서 이 기분을 맛봤다면 가능하면 재독의 기회를 만들어서 아야츠지 유키토의 한정된 듯하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무한한 정신세계를 찬찬히 음미해보시길.
잔인함과 선정성이 싫어 미스터리를 꺼리는 독자라면 일상 미스터리로 미스터리에 입문해보길 바란다.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일상 미스터리를 통해 논리의 예술을 느껴보길 바란다. 일상 미스터리의 매력에 빠진 독자라면 일상 미스터리의 고전, ‘엔시 씨와 나’ 시리즈를 읽어보길 바란다. 먼저 읽어본 독자로서, 이 작품은, 모든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