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찰들의 공통점은 순수한 우정을 담아내었다는 점이다. 작성자들은 학문적 고독감, 정치적 불안감, 국난의 위기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친구의 도움이나 이해를 청하기도 하였고, 정책을 입안하고 구국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친구의 조언을 기대하기도 하였다. 또한 예술상의 취향, 구도에 대한 열정, 소외의 현실과 관련하여 소회를 털어놓은 예도 있다.
이 간찰들에 눈을 주고 찬찬히 읽다보면, 교제의 예술로서 간찰이 지닌 매력을 느낄 수가 있고, 선인들이 교유를 통해 스스로의 인격과 책무의식, 학문과 예술을 향상시켜나간 궤적을 살필 수가 있다.
이 평전에서 나는 김시습의 영혼의 일대기를 서술하려고 하였다. 여전히 많은 부분을 의문으로 남겨두었지만, 그의 단조로운 삶의 이면에 감추어진 고뇌와 자유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고, 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두타승의 모습으로 서울을 등지고 떠났던 그의 나이에 가까워지고서야,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상관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줄 알게 되었다. "나는 알지, 나는 알아!" 말하고 껄껄 웃으면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른거리는 것도 같다.
옛사람들은 자기의 묘표와 묘지를 적고 자기의 만시를 지으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부조리에 대한 격한 감정을 간결한 언어로 응축시켜 남기기도 했으며,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털 웃음을 웃기도 하고, 말래야 말 수 없는 자기 양심을 발로하기도 했다. 묘표에 운문이 첨가되면 묘비명, 묘지에 운문이 첨가되면 묘지명이라 했다. 그러한 기록들을 통틀어 편의상 자찬묘지명이나 자찬묘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현대판 와유록이다. 그러나 단순히 명문들을 집적해 둔 것이 아니다. 선인들이 산을 유람한 체험을 기록하거나 산에 대한 상념을 적은 산문들을 선별하여 산놀이의 의미를 논학, 선인들의 산놀이 방식과 자연과의 교감 방법을 분석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산놀이에 참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가볼 수 없는 북녘의 명산들에 관한 글들도 선별해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새삼 환기하여 보고자 한다.
여기에 엮은 잡문들은 1992년 강원대학교 재직 때부터 신문, 잡지, 사보, 회보, 월보, 인터넷 신문 등에 기고했던 글들이다. 그 글들을 정리해서 나의 영혼의 편력상을 드러내고자 한 것은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다. 매 순간 허무와 싸우고 있는 한 인간의 고뇌를 남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도 담고 있다. ('책을 엮으며' 중에서)
“민중의 소리를 들어라. 민중의 소리를 두려워하라.”
이것은 근대 이전의 정치 강령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기에 위정자는 거리에서 노래되는 동요나 민간에 떠도는 참요와 요언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정권을 농단하는 자들은 민중의 소리를 두려워하여 그것을 금압하려고 했다. 고려 원종 때 임유무가 동요와 도참(圖讖, 앞날의 길흉을 예언하는 술법)을 퍼뜨리는 자를 체포하면 관작과 재화를 상으로 주겠다고 했던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참요나 요언, 산호 등은 공적 언론과 대치되는 대항적 언론으로서, 대개 현실 정치의 잘못을 명확하게 지적해왔다.
선인들은 우리 산하의 풍경이 그렇게 다층의 의미를 품고 역동적으로 현현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우리 산하의 풍경을 한시로 묘사하고, 그 속에서 일어났던 역사와 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활의 의미를 반추하여 왔다.
선인들이 산하의 곳곳에 남긴 한시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놀랍고.슬프고.기쁘고.아쉬운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산하가 지닌 다층의 의미를 스스로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간에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한문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지적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한문고전과 한문학을 소개하는 교양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나는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았다. 마침내, 한문고전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알아두어야 할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최소한의 참고문헌을 소개하자고 마음먹었다. -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