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던
시인과 노래꾼은 일찍 죽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들보다 더 늙은 사내가 되어 있었다.
그들보다 오래 살아남아
그들보다 더 발견해 낸 생의 비밀은 무엇이었나.
거의 매일 반성하며
때론 모른 척하며
가끔은 분노하며
매번 체념하며
지독히 쓸쓸해하며
어쩌다 한번 시를 쓰며
벌써 몇 계절을 흘려보냈다.
다시 겨울이다.
몇 년째 겨울잠 잘 곳이 마땅치 않다.
첫 시집을 내놓으려니 가슴 한쪽이 서늘하다.
발 뺄 수 없는 곳까지 들어와버린 느낌.
이 세상에 내려왔었다는 증거를
겨우
하나
남긴 셈이다.
오래 묵은 시들을 내보낸다.
더이상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웃고 있는
구한말 흑백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있어야 할 일들은 생기지 않았다.
사랑하던 사람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떴고
좋아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미쳐갔다.
그사이 이 땅의 대기(大氣)가 달라졌다.
팽팽하던 마음의 현(絃)이 꼬일 대로 꼬여서
끊어지기 직전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모진 삶을 쳐다보며
그래도 깔깔거릴 수 있는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하여 가장 소중한 나의 가족
봉순과 니체,
풀냄새 나는 것들 앞에선
여지없이 녹아내리고 마는
아내 덕분이다.
사랑한다.
2013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