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을 쓰는 이 순간까지 내 머릿속은 여전히 시끄럽다. 시집도 아니고 산문집을 내겠다고? 잘하는 일인가? 더구나 새로 쓴 글도 아니고, 그동안 써놓은 것 그냥 모아놓은 건데, 이런 책을 몇 명이나 읽겠나? 나무들에게 죄를 짓는 일은 아닐까?
그러나 한 번 더 뻔뻔해지기로 하고, 머리말을 다시 이어 간다. 실은 2년 전 명퇴를 하면서 퇴임 기념으로 책을 한 권 묶고 싶었다. 그런데 퇴임 후 뜻하지 않게 한국작가회의와 출판진흥원, 서울문화재단 등등의 단체 일을 하게 돼서, 도무지 짬이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제 이런저런 일들을 마무리했고, 숨도 좀 돌릴 수 있게 됐고, 마음의 여유도 좀 찾았다.
이 책은 전교조 문제로 대천고에서 해직됐던 지난 1989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약 30여 년 간 신문과 잡지 등에 썼던 칼럼과 산문, 그리고 친구들 시집에 쓴 발문 등 약 60여 편의 산문을 모은 책이다.
원고를 다시 읽어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지난날 썼던 글들이 너무 날이 서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또 실천과 행동 없이 말만 앞세운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부끄럽지만, 지난 30년 동안 쓴 글을 다시 읽어 보고 한 줄의 회한마저 없을 수는 없으니, 30년 세월이 고작 책 한 권으로 남았구나, 그냥 열심히 애쓰며 살아오기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 1막을 마치고, 한 생을 다시 되돌아보니, 인간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피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이제 육십 중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됐지만, 그러나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니, 앞으로 다가올 일들은 그냥 받아들이면서, 너무 애쓰지 않으면서, 쓰기 싫으면 쓰지 않으면서, 자고 싶으면 애써 깨어 있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요즘 뜬금없이, 대체 인간의 생로병사가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교 공부를 조금 하고 있다. 어느 날 스님이 내게 물었다. 왜 불교 공부를 하려고 하느냐고. 괴로워서 공부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뭐가 괴롭냐고 물었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보러 가는 마음과 손자를 보러 가는 마음이 너무 달라 괴롭다고 말했다. 내 ‘두 마음’이 괴롭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보러 가는 마음이 왜 괴로운지 사실 나는 이미 답을 다 알고 있다.
돌아보면 가족과 친구, 내가 다녔던 학교의 동료 교사들과 가르쳤던 제자, 내가 일했던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온갖 문학단체, 문화 단체, 시민 단체, 봉사단체의 동료와 선후배, 그리고 내 삶의 마지막까지 친구들로 남을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 (방갈모)의 친구들 등등, 살면서 만난 모든 이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 두루 고맙다.
나는 지금 사진 한 장을 보고 있습니다. 일본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한 후, 목이 잘린 채 나체로 나뒹구는 젊은 여성의 사진입니다. 교육문예창작회 여름 연수차 목포에 갔다가 목포 근대역사관 2층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너무 참혹하고 충격적이어서 밥을 못 먹을 정도였습니다. 이 사진 뿐만이 아닙니다. 일본군들의 성 노예로 끌려간 위안부들의 짐승 것만도 못한 숙소, 내장이 모두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있는 생체 실험 사진 등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사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목이 잘린 채 죽어 간 여성에게 ‘나라’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루하루를 지옥 속에서 살았을 종군 위안부들에게 도대체 ‘국가’는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민족’이란 개념은 이미 한물 간, 철 지난 시대착오로 취급당하지만, 우리 민족에게 ‘민족’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강제 징용 문제, 위안부 문제 등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들이 제대로 해결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세력이 아직도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서 일부러 목록에서 누락시키고, 사후에도 공개하지 않는 등 철저하게 밀실 행정으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실수로 비공개했다.’, ‘아직 처리하지 않았다.’, ‘중요성을 몰랐다.’는 등의 해괴한 거짓과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했습니다. 협정대로라면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우리나라에 진주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인데도 말입니다. 일본 군인이 우리나라에 또 다시 진주하는 것은 어느 외국의 군대가 들어오는 것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적인 일인데도 말입니다.
(중략)
우리의 근대는 안타깝게도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한 침탈 과정이었습니다. 참으로 ‘슬픈 근대’였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는 통한의 암흑 시대였습니다. 말도 빼앗기고, 정신도 빼앗긴 시대였습니다.
더구나 친일파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했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친일파들의 글을 읽다 보면 화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특히 서정주, 이광수 등과 같은 문인들과 지식인들의 친일 행위는 그들의 명성이 지니고 있었던 파급력 면에서 그 죄가 더욱 무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일을 자꾸 끄집어 내서 좋을 게 무어냐고 따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지난 시절의 공과를 분명히 해야 우리 역사에서 비슷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고,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평생에 걸친 내 시의 주제는 ‘사랑’과 ‘혁명’과 ‘학교’였다. 그런데 시집을 내기 위해 지난 5년 동안 쓴 시를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교육시가 단 한 편도 없었다. 그만 학교를 떠날 때가 된 것일까? 또한 이제는 사랑과 혁명을 말하기에는 나도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 그럼에도 아직 말이 너무 많다. 써 놓은 시를 반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사설이 너무 길고 시 곳곳에 덕지덕지 사족이 흉하게 매달려 있다. 모두 내 욕심 때문일 것이다. 내 말은 도대체 언제 간결해지려는지. 내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알 것이다. 내가 당신들을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