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미스터리의 상징과 같은 자못 진지한 배경에서 미스터리 소설의 클리셰를 희화화하는 인물들의 언행은 미스터리 팬들에게 많은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에서는 ‘명탐정’이라는 캐릭터를 비아냥거리는 듯하고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추리소설’을 애들 놀이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품을 읽어나가는 동안 미스터리를 향한 작가의 애정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은, 작가 또한 이 장르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 낡아버린 정통 미스터리란 장르에 아쉬움을 느끼긴 해도, 여전히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연륜 있는 작가의 매몰찬 한 문장 한 문장이 사실은 애정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야기의 진행에서 수수께끼 풀이의 비중이 얼마나 큰가로 ‘일상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를 구분하는데, 그 기준으로 보면 마이다 히토미 시리즈는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느긋한 분위기의 일상이 진행되는 듯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수수께끼 풀이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고 그 에피소드가 마무리 될 때까지 수수께끼 풀이가 이어지죠. 작가인 우타노 쇼고 씨가 왜 ‘편안한 미스터리’, ‘부드러운 본격’이란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진홍빛 속삭임』은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직 신인이던 1988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유명한 ‘관’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미로관의 살인』다음에 출간된 그의 초기작입니다. 장르 자체가 본격 미스터리가 아닌 호러 서스펜스이며 신인 시절에 쓴 작품이라 세련된 맛은 다른 작품에 비해 조금 떨어집니다. 하지만 진홍빛이라는 강렬한 심상과 폐쇄적인 학교의 특이한 분위기, 그리고 속도감 있는 전개에 초점을 맞춘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말 표현 중 ‘깨소금 맛이다’란 관용구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남의 불행을 보고 통쾌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영미권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schadenfreude’란 단어가 있습니다. 원래는 독일어인데 타인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함을 뜻하는 말이죠. 이런 점을 보면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에게는 ‘남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는 감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인물들을 지켜보며 히죽거린 것이 마음에 걸린 독자가 계시다면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므로 걱정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