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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이병철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84년, 대한민국 서울

최근작
2024년 5월 <해저 연애 통신>

빛나는 의심, 눈부신 균열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라던 이상의 고백은 가난이 예술가에게 질병과 굶주림이라는 절망을 가져다 줄 때 오히려 정신은 풍요롭다는 역설이다. ‘육체’의 세계인 자본주의 도시, 대중성과 결별하여 정신적 공간인 ‘방’ 안에 스스로 고립되는 순간 예술가는 마침내 ‘천재’를 회복해 ‘유쾌하’다고, 이상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문학이 더 이상 유쾌하지 않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 문학은 언제나 고통이고 절망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가 이상보다 13년을 더 살았다. 김유정보다, 기형도보다 11년을 더 살았다. 나는 이미 그들처럼 될 수 없다. 내 생은 평범한 시민인 쪽이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숨어 살며 무언가 쓰고 있다. 이상의 방처럼 내 방도 글쓰기, 공상하기, 냄새 맡기 등의 정신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이고 싶지 않다. 천재는 애초에 틀렸고, 박제가 되기 싫은 것이다. 잘 살고 싶다. 건강하게, 남들처럼, 돈 벌고, 결혼하고, 저축하고. 밤마다 세속적 욕망과 문학이 격렬하게 싸운다. 삶과 문학 사이에서 길항하다보면 삶도 문학도 다 이룰 수 없다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 2023년 가을

빛보다 빛나는 어둠을 밀며

이번 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타자’다. 팬데믹 상황에서 타자에 대한 혐오와 분리, 갈등이 전염병보다 무섭게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문학이, 시가 사람의 손을 대신해 인간과 세계를 좀 더 나은 상태로 이끌어주길 소망했다. 대면 접촉도, 여행도,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도 불가능해진 언택트 시대에 우리는 전부 각자의 격리공간에서 타자와 차단된 채 두려움과 분노, 혐오, 무기력함에 지쳤다. 서로 이질적 타자인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자유, 평화, 인권, 소수자의 더 나은 삶, 정치적 올바름을 한 목소리로 외치고,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의 온도를 나누던 접촉과 교류를 다시 기억해내는 데 시의 소명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밀실’의 시보다는 ‘광장’에서 타자를 향해 외치는 시들을 주목하고, 타자에 대한 무한한 희생과 책임이라는 낭만적 윤리를 적용해 최근 우리 시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서문에서 꼭 밝힐 게 있다. ‘빛보다 빛나는 어둠을 밀며’라는 책 제목은 이영주 시인의 시 「기도」(<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2014)의 “빛보다 빛나는 어둠을 밀면서”에서 빌려온 것이다. 원고를 묶으면서 반드시 이 제목으로 해야 한다는, 신앙에 가까운 확신 같은 게 들었다. 우리 사회의 약자, 소수자, 아브젝트들은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안에 있다. 때로 빛은 너무 환해 물상을 분산시키지만, 어둠은 상과 상, 그림자와 그림자를 밀착시킨다. 순백의 빛이 설맹(雪盲)을 만드는 데 비해 암흑처럼 보여도 어둠은 늘 암중모색(暗中摸索)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렇게 어둠과 어둠이 서로 끌어안을 때, 새벽처럼 푸르스름한 빛이 부화할 때, 그 빛이야말로 빛보다 빛나는 어둠일 것이다. 타자와 연대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일지라도 우리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빛보다 빛나는 어둠을 온몸으로 밀면서 나아가야 하리라. 빛보다 빛나는 문장을 흔쾌히 빌려주신 이영주 시인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랑의 무늬들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 안다는 것은 결국 사랑한다는 것인데,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알기도 전에, 보기도 전에 먼저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먼저 사랑해버린 것을 알기 위해, 그것을 분명히 보기 위해 긴긴 밤을 날아 별의 시간마저 기꺼이 건너가는 한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네 심장에 얼음이 열렸을 때 나는 온몸에 불을 지르고 네게로 들어갔지 살육과 구원이 쩡쩡 얼어붙은 강에서 한 방울의 영원이라도 녹이고 싶었지 신에게는 신의 무한이 있고 인간에게는 사랑이라는 찰나가 있고 나만 녹았지 이제 나는 스스로 없는 자 2021년 10월 이병철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

시간강사 봉급과 원고료만으로는 좀 쪼들려서 짬짬이 배달 라이더 투잡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일 년 가까이 됐는데요. 배달을 소재로 에세이집을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좀 망설였습니다. ‘학위까지 하고 학교에 나가는 사람인데……’ 같은 체면 문제는 아니고, 이런 책들이 으레 그러듯 제 글도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페이소스 과잉이 될까 봐서요. 그래도 스쿠터를 몰고 음식을 나르는 시간들 또한 ‘삶’이고 내 것이기에, 기록하고 기억하고 나누는 게 글 쓰는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해 결국 책을 내게 됐습니다. (…) 요즘 빨래만 널면 비가 옵니다. 빨래 널어 놓고 엄마 집에 심부름 다녀왔는데, 이런…… 다 젖어 버렸네요. 그나저나 간장약과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캔맥주 두 개를 같이 챙겨 주는 엄마의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아들은 저 하나뿐이지만, 우산장수 아들과 부채장수 아들을 동시에 걱정하는 뭐 그런 걸까요? 엄마 마음을 생각하다가, 그 걱정을 걱정하다가, 생각하고 걱정하자니 소주가 필요해서, 불효의 방식으로 오늘은 한잔 마십니다. 요즘 엄마 소원은 제가 배달 라이더 일 안 하는 건데……. 이 책을 읽으면 엄마는 덜 걱정할까요 더 걱정할까요? 저도 엄마도 여러분도 걱정을 좀 내려놓고 살아야 할 텐데요. 각설하고, 여기 쓴 이야기들은 가벼운 단상들입니다. 기죽지 않는 유쾌함 같은 게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아마 말복쯤 되면 여러분들 손에 책이 들려 있을 거예요. 그날 저는 열심히 배달하고 있을게요. 삼계탕 주문이 많을 거거든요. 2022년 여름, 안양 1번가 먹자골목에서

해저 연애 통신

엄마랑 동생이랑 매제랑 조카 승유랑 같이 시장을 걷고 어묵을 사 먹고 김치녹두빈대떡도 먹었다. 달걀빵은 승유랑 반씩 나눠 먹었다. 엄마는 쑥을 한 바구니 샀고, 나는 눈깔왕사탕을 잔뜩 샀다. 아빠 엄마 손 잡고 모란시장 가서 강아지 토끼 앵무새 청거북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던 1990년 봄날의 내가 시장에 서 있었다. 불러도 불러도 내 쪽으론 돌아보지 않는 내가 저기 있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어린 내가 서 있던 자리엔 햇살만 남아 있고, 승유가 그리로 종종종 걸어와 환하게 웃었다. 이 책은 승유와 함께 읽을 것이다. 2024년 5월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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