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암울하고 무명시인은 밤잠을 설치며 고민한다.
여지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바이러스가 모든 걸 잠식해버린 시대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온갖 묘수를 짜내보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바이러스가 비웃듯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보란 듯이 휩쓸고 가고
마침내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에 입각한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누구랄 것도 없이 고독하다.
모든 인간은 고독하지만 시인은 그나마 그 나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어루만져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시인인 나 또한 고독하기에 시를 쓰지만
고독한 많은 사람들이
내 시를 읽고 조금이라도 위안 받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편찮으신 몸으로도 늘 작은아들인 날 걱정하시는 어머니,
무관심한 듯하지만 내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아내,
두 딸과 두 사위,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다섯 명의 손주들,
시집이 나올 때쯤 새로 태어날 손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
3집 <운길산역에서>를 출간하며 느끼는 감정은 역설적으로 무척이나 두렵다. 만약 내 시가 방황하는 영혼의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지도 모른다는 기우에 가까운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존경이 사라진 이 혼돈의 시대에 청춘이 의지할 곳은 아무데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정자들은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며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지도자들은 줄줄이 감옥행이다. 어쩌면 시는 지금 엄혹한 이 시대에 화려하게 부활해야 한다. 시가 이 시대를 관통하고 시가 이 시대를 정확하게 끄집어낸다면 결코 시대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