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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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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원문과 함께 읽는 셰익스피어 소네트>

로미오와 줄리엣

문득 폴란드의 셰익스피어 학자 얀 코트(Jan Kott)가 생각난다. 그는 『셰익스피어는 우리들의 동시대인��이라는 책을 써서 전 세계 연극인들과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사람이다. <리어 왕>과 <한여름 밤의 꿈>의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어서 현대 연극사에 새 장을 연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의 업적도 얀 코트의 이론적 뒷받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얀 코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방대하고 웅장하고 어려워서 접근하기 힘들어 보이는 세계문화의 유산 셰익스피어를 우리 곁으로 가깝게 끌어온 재능 때문에 그 빛나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우리 동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었다. 그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딱딱한 학술 강연보다는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을 더 좋아했다. 남대문시장의 사람들, 활력, 그 벌거벗은 삶의 소용돌이에 도취되어 떠날 줄 몰랐다. 셰익스피어가 다룬 드라마는 그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언제나 국경을 초월해서 우리 주변에 손에 잡힐 듯이 깔려 있었다. 그가 한 말 가운데서 흥미로운 것은 빅토르 위고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위고는 1850년대 말 채널 아일랜드에 유배당한 적이 있다. 위고는 아들과 함께 어느 겨울날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그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아들도 절망적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번 유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위고는 대답했다. “오래 걸릴 것이다.”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지내시겠어요?” 아들의 질문이다. “바다를 보면서 지내겠다. 너는 뭘 할래?” 위고는 궁금했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하지요.” 아들의 답변이었다. 위고의 아들은 나중에 유명한 셰익스피어 번역가가 되었다. 얀 코트가 전해준 이 에피소드에서 내가 강하게 느낀 것은,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 위고를 껴안아준 바다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불운했던 정치적 유배는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그 바다는 지금도 영원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변하고 있다. 각자의 현실도 변하고 있다. 위고의 현실도 변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위고가 유배된 현실 속에서는 그의 동시대인이었다. 내가 전란 중에 포탄 속에서 읽었던 셰익스피어는 나의 동시대인이었고, 나의 암담했던 현실을 비춰보는 거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시간과 나의 현실, 이 두 시간이 서로 밀접한 정신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면 셰익스피어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동시대인이 될 수 있다.

리어 왕

셰익스피어의 비극 세계는 선과 악이 혈투를 벌이는 무대입니다. 햄릿은 클로디어스와 대결합니다. 리어왕은 고네릴과 리건과 대결합니다. 에드거는 에드먼드와 대결합니다. 이아고는 오셀로와 대결합니다. 맥베스는 덩컨 스코틀랜드 왕과 대결합니다. 코델리아는 왜 죽어야 합니까. 데스데모나는 왜 죽어야 합니까? 리어왕, 햄릿, 오셀로, 덩컨은 왜 그렇게 죽어야 합니까? 글로스터 백작은 왜 두 눈을 빼앗겼습니까? 거트루드는 왜 독약을 마셔야 했습니까?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전쟁은 계속됩니다. 악이 선을 제압하고, 악은 자멸합니다. 세상은 말세의 혼란이요 황무지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문명의 황야 속에서 펜을 들었습니다. 그는 역사와 대결합니다. 그는 악의 근절을 위해, 평화와 질서를 위해 싸웁니다. 그의 작품은 악에 대한 저항의 선언이요, 절실한 기도요 통곡입니다. 비극을 읽고 참담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비극이 주는 정화작용, 카타르시스(Katharsis) 때문입니다. 비극은 인간의 마음에 건강한 효과를 미친다는 것입니다. “연민과 공포를 통해 감정을 정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병적인 정서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요소가 됩니다. 우리는 비극을 통해 비극적 인물과 그 상황에 동화되면서 자기중심적인 몰입에서 차츰 벗어나 ‘외부’로 자신의 존재가 확산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정(同情)을 통한 영혼의 확대는 심리적이며 도덕적인 건강에 이롭게 작용합니다. 비극이 인간 생활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비극의 수용자는 인식하게 되고, 우리의 통찰력은 고통을 극복하고 얻어지는 조화로운 정신적 안정을 모색하게 됩니다. 이때 도달되는 정화작용을 통해 정신은 새로운 삶의 인식에 도달합니다. 비극작품은 행동의 모방을 통해 동화작용을 일으키면서 개인의 영역을 벗어난 보편성(universality)을 얻게 됩니다. 비극작품은 질서와 조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수단이 됩니다. (중략) 기도와 자비심과 용서는 셰익스피어가 작품에서 남긴 유언의 ‘키워드’입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끝머리는 항상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등 비극의 주인공들이 겪은 환멸과 절망 너머로 인간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의 비극을 읽는 희열과 행복은 바로 이것입니다.

베니스의 상인

문득 폴란드의 셰익스피어 학자 얀 코트(Jan Kott)가 생각난다. 그는 『셰익스피어는 우리들의 동시대인��이라는 책을 써서 전 세계 연극인들과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사람이다. <리어 왕>과 <한여름 밤의 꿈>의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어서 현대 연극사에 새 장을 연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의 업적도 얀 코트의 이론적 뒷받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얀 코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방대하고 웅장하고 어려워서 접근하기 힘들어 보이는 세계문화의 유산 셰익스피어를 우리 곁으로 가깝게 끌어온 재능 때문에 그 빛나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우리 동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었다. 그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딱딱한 학술 강연보다는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을 더 좋아했다. 남대문시장의 사람들, 활력, 그 벌거벗은 삶의 소용돌이에 도취되어 떠날 줄 몰랐다. 셰익스피어가 다룬 드라마는 그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언제나 국경을 초월해서 우리 주변에 손에 잡힐 듯이 깔려 있었다. 그가 한 말 가운데서 흥미로운 것은 빅토르 위고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위고는 1850년대 말 채널 아일랜드에 유배당한 적이 있다. 위고는 아들과 함께 어느 겨울날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그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아들도 절망적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번 유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위고는 대답했다. “오래 걸릴 것이다.”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지내시겠어요?” 아들의 질문이다. “바다를 보면서 지내겠다. 너는 뭘 할래?” 위고는 궁금했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하지요.” 아들의 답변이었다. 위고의 아들은 나중에 유명한 셰익스피어 번역가가 되었다. 얀 코트가 전해준 이 에피소드에서 내가 강하게 느낀 것은,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 위고를 껴안아준 바다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불운했던 정치적 유배는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그 바다는 지금도 영원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변하고 있다. 각자의 현실도 변하고 있다. 위고의 현실도 변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위고가 유배된 현실 속에서는 그의 동시대인이었다. 내가 전란 중에 포탄 속에서 읽었던 셰익스피어는 나의 동시대인이었고, 나의 암담했던 현실을 비춰보는 거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시간과 나의 현실, 이 두 시간이 서로 밀접한 정신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면 셰익스피어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동시대인이 될 수 있다.

왜 청바지를 입은 재벌인가?

2015년 6월 15일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현재 5천만 명의 극빈자들이 지구상에 살고 있으며 이 숫자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수치라고 발표했다. 아프리카 극빈 지역 아동들을 구호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소리가 매일 전파를 타고 있다. 아프리카뿐인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재난으로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난민들의 참상과 북한에서 굶어 죽은 300만 명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세상은 이토록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돈이란 무엇인가? 돈을 어떻게 벌면 억만장자가 되는가? 이 세상에는 돈 벌기 위해 돈을 버는 지하경제로 호사를 누리는 부자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문화도, 교육도, 자선도, 눈물도, 국민도, 뜨거운 가슴도 없다. 나는 그런 인간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경멸감을 느낀다. 내가 존경하는 재벌들은 피땀 흘려 이룩한 재산으로 문화예술을 후원하고 자선의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사회 공익에 헌신한 재벌들의 인생을 접하면 나는 인간의 긍지를 느끼게 되고 행복하다. 스티브 잡스는 맨발의 히피였다. 반물질주의를 구가하던 맨발의 무명 청년이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초지일관, 그는 히말라야 선원(禪院)의 철인(哲人)이었다. 잡스는 물질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벌어들인 돈은 아낌없이 자선단체에 기부했고, 지금도 그 일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대재벌 워런 버빗은 말했다. “돈이 목적이 아니다. 돈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그는 50년 전 구입한 검소한 시골집에 살면서 그 집과 아내에게 사준 반지가 평생 구입한 최고의 물건이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자산을 남기지 않고, 99퍼센트의 유산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언명했다. 알타 메사 공원묘지 스티브 잡스의 호젓한 산소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다. 이 모든 희한한 일이 평생 그가 입고 다닌 목이 긴 검은 스웨터와 청바지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처음 그 차림으로 신제품 발표회장에 나타났을 때, 온 세상 사람들은 놀라고, 열광했다. 잡스는 그전의 재벌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느꼈다. 빌 게이츠는 어떤가. 하버드 대학생 시절, 36시간 자지 않고 공부하고, 입은 채로 그 자리에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공부하는 불규칙한 생활을 했다. 이 습관이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침대서 자는 일이 드물었다. 어디서나 앉으면 자고, 누우면 잠들었다. 게이츠는 복장도 잠자리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일을 시작하면 열광하는 버릇이 있었다. 단 5분도 아까웠다. 옷을 차려입고 멋을 부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특별한 모임 이외에는 넥타이도 매지 않는다. 그래서 티셔츠와 청바지가 그에게는 가장 편리하고 어울리는 옷이 된다. 청바지의 의미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보통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쏟으면서 제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 점, 그는 재벌 특권층이 아니라 서민적인 생활 개념을 지니고 있는 보통사람이다. 그는 항상 대중 취향이다. 노동자, 젊은이, 청빈거사(淸貧居士)들과 예술가들이 애용하는 청바지. 남녀 차별, 빈부 차별 없는 인간의 옷. 영원한 청춘의 푸른 깃발. 그 청바지를 그는 입고 있다. 그는 ‘기브 앤드 테이크’의 입장을 거부한다. ‘기브 앤드 기브’의 입장이다. 아낌없이 주고 간다는 것이다. 시대와 세상이 변해도 세계 부호 1위를 지키는데, 그 비결은 축적한 재산을 인류를 위해 무제한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파고들면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는 자비의 정신 때문이다. 게이츠는 청바지를 입고 이 일을 하고 있다. 민족, 인종, 종교, 문화의 장벽을 뚫고, 정보 하이웨이를 실현한 IT처럼 청바지는 미래로 가는 게이츠 정신의 표징이 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출발도 하버드 대학교 캠퍼스였다. 그가 창시한 ‘더페이스북’은 대학생을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하는 온라인 디렉토리였다. 이 프로그램은 여타 다른 대학에도 순식간에 파급되었다. 이것을 기반으로 마크는 팰로앨토에 사무실을 열었다. 마크는 말했다. “나는 이 세상을 확 열어 보이고 싶다.” 대학 캠퍼스는 더페이스북 때문에 이윽고 확 열린 광장이 되었다. 당시 대학은 청바지 물결이었다. 자연히 마크의 복장은 청바지 캐주얼이 되었다. 마크는 대학문화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2005년 더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미국 대학의 학부 학생 85%가 페이스북 등록자가 되었다. 페이스북은 미국 대학 정보 시장을 제패했다. 페이스북은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마크는 홀가분하게 청바지 차림으로 가방 하나 들고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다. 마크의 여행은 그동안 경영을 맡은 셰릴 샌드버그에게 자유와 독단을 허락했다. 이런 자유와 해방은 청바지 문화에 속한다. 페이스북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마크는 별도의 회장실을 갖고 있지 않다. 사원들 방 한구석에 자신의 테이블을 놓고 오가는 사원들과 교류한다. 페이스북은 격식과 규율에 얽매인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책임의 자율적 회사 분위기를 고취하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캐주얼한 청바지 복장은 바로 그런 정서적 감동을 말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한 인간과 기업의 관계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마크는 벌어들인 돈을 대부분 사회를 위해 흔쾌히 내놓고 있다. 그에게 돈은 유익한 다른 일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을 그는 찾고 있다. 돈이 있으면 호화주택을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다. 고급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 책은 살 수 있지만 지식은 살 수 없다. 지위나 명예는 살 수 있어도 존경은 살 수 없다. 이런 교훈을 삭이고 다지며 일하는 마크 저커버그를 향해 우리는 갈채를 보내고 있다. 몇 년 전 필자는 수많은 역사의 변전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재산을 축적해서 재벌이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창업 비화를 소개하고, 그 축적된 재산을 어떻게 사회에 되돌려주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재벌들의 밥상』이란 책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그중 현대 정보화시대를 상징하는 세 명의 기업가(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를 선정하여 그들의 눈부신 개성, 드라마틱한 성공, 독특한 매력, 무엇보다도 재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념과 실천을 조명한 것이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주자였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부와 영향력으로 세상을 더욱 혁신시키는 ‘청바지 재벌’이다.

원어와 함께 읽는 셰익스피어 명언집

| 책을 내면서 | ◎ 셰익스피어 명언은 경이롭고 아름답고 장엄한 언어의 향연 2000년 9월 1일에 범우사에서 첫 명언집을 냈다. 2004년 1월 15일에 초판 3쇄의 기록을 남겼다. 이제 2020년 다시 책을 찍게 되어 애독자들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범우사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번역하면서 나는 가슴에 와 닿는 수많은 셰익스피어 명언에 접하게 되었다. 경이롭고 아름답고, 장엄한 언어의 향연에 접하면서 명언은 나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길잡이가 되었다. 첫 출간 10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나는 명언집을 다시 펼쳐보고 몇 가지 일을 다시 했다. 판본의 크기를 줄이다보니 부피가 커져서 전체 분량을 축소했다. 내용과 글이 중복되는 부분을 골라냈다. 긴 문장은 잘라내고, 철자상의 오류도 가려냈다. 언어도 간결하게 다듬었다. 책의 겉모양도 바꾸고, 연보도 보완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옷매무새가 산뜻해진 느낌이다. 푸른 잎이 돋고, 꽃이 만발한 이 아름다운 봄날에 나들이하기에 좋은 단장을 마친 셈이다. 이제 반가운 독자들을 만날 차비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우리들의 동시대인이다. 그의 작품은 인류의 기념비처럼 우뚝 솟았다. “시대를 초월한 정신”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집은 성서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되었다. 나는 범우사 윤형두 회장의 권유를 받고 범우사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4대 희극, 4대 사극을 내고, 《이웃사람 셰익스피어》라는 해설집을 출간했다. 한 출판사와 얼굴을 맞대고 긴 출판의 여로를 함께 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 혈맥은 끝나지 않고 있다. 나는 그 행운에 감사한다. 세상이 험하고 인생이 괴로우면 나는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기쁘고, 반갑고, 신바람 나도 나는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말하자면 셰익스피어는 나의 벗이요, 안식처요, 정신의 공원이다.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강의하고, 무대에서 일하고, 비평을 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셰익스피어를 널리 알리는 대중강연을 계속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동시대인이었던 중국의 홍응명과 대조하면서 이병국 대사와 함께 나는 “셰익스피어와 함께 읽는 채근담”을 출간했고, 또한 셰익스피어의 시를 번역해서 “원문과 함께 읽는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출간해서 일 년 내에 재인쇄를 거듭하는 신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평생을 셰익스피어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해서 일학년 때부터 셰익스피어의 석학 권중휘 교수의 강의를 경청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셰익스피어 일을 도와주신 출판사 여러분들, 학계 여러분들, 연극계 예술가들, 그리고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2020년 봄, 강화도가 내려다보이는 양곡에서

유진 오닐 : 빛과 사랑의 여로

1996년 여름 방학 때, 나는 김진식 박사, 김응태 교수 등과 함께 미국에 있는 제자 김철권(사진작가)의 안내를 받으며 유진 오닐 유적지 답사에 나섰다. 나는 대학에서 유진 오닐을 강의하고, 한국유진오닐학회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오랫동안 유적지 탐방을 꿈꾸고 있었다. 그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다른 작가도 그렇지만 특히 유진 오닐의 작품은 자전적인 요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그의 연고지를 방문하는 일은 중요했다. 30년 동안의 창작 생활에서 유진은 62편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 가운데서 11편은 폐기되었다. 남은 작품 가운데 반 이상은 자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는 답사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짜고, 자료 조사를 마친 다음, 동료들과 함께 1996년 7월 17일 로스앤젤레스로 향해 출발해서 8월 2일 서울로 돌아오는 여행길에 올랐다. 오닐 명작의 산실 타오하우스를 첫 탐방지로 정하고, 1996년 7월 20일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해서 해안선 1호 고속도로를 따라 북상한 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유진 오닐의 집을 찾아본 다음 1박하고, 이튿날 근교 댄빌시로 갔다. 산언덕에 자리 잡은 타오하우스에 가려면 사전 예약 후 국가유적지 관광용 차량을 타야 했다. 전원도시 댄빌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평화롭고, 아름답고, 눈부신 햇살 속에 마을은 꿈꾸듯 잠들어 있었다. 찻집, 갤러리, 형형각색의 아담한 주택들, 꽃밭 같은 골목길. 꿈속을 유영하는 듯 오가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차를 타고 굽이굽이 돌아 언덕을 오르자 눈앞에 타오하우스가 보였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감회를 잊을 수 없다. 타오하우스는 심해의 패각(貝殼)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닐의 대사가 떠올랐다. “인생은 각자에게 외로운 골방이다.” 댄빌 마을 뒤 라몬 계곡 황금빛 언덕은 멀리 디아블로산을 향해 뻗어 있고, 타오하우스 아래는 호두나무들이 출렁대는 숲의 바다였다. 타오하우스는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유진 오닐이 아내 칼로타와 함께 살면서 <밤으로의 긴 여로> <잘못 태어난 아이를 위한 달> <얼음장수 오다> 등 명작을 집필한 창작의 산실이다. 오닐은 고난과 시련의 위기를 겪으면서 유랑하다가 마침내 타오하우스 서재에서 칩거했다.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나직한 담벼락에는 ‘타오(道敎)의 집’이라는 문패가 있었다. 마당에는 칼로타가 수집한 중국 돌 수반이 서 있었다. 마당은 넓고 푸르렀다. 서재는 2층에 있었다. 그가 사용하던 책상에는 연필과 깨알처럼 써놓은 원고가 놓여 있었다. 칼로타는 연필로 쓴 험한 글씨의 원고를 해독하며 타자에 옮겼다. 그 일은 손끝이 시리고 눈이 가물가물해지는 노고였다. <밤으로의 긴 여로>를 집필한 책상 앞에서 나는 새삼 감개무량했다. 그 거실에서 안내원은 열심히 이 집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 집 기념품점에서 나는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몇 권의 오닐 관련 서적을 구입했다. 책을 들고 오닐이 거닐었던 정원과 주변 길을 산책하면서 겉으로는 화려하고, 명예롭고, 영광스러웠지만 속으로는 들끓고, 아프고, 고독했던 오닐의 일생을 나는 더듬고 있었다. 나는 뉴욕으로 왔다. 뉴런던 테임스 강변에 있는 오닐 여름 별장을 탐방했다. 그 집은 1912년 유진 오닐 가족이 살았던 일명 ‘몬테크리스토 오두막’인데 <밤으로의 긴 여로>의 무대가 된 집이다. 브로드웨이 43번로 오닐 탄생지 바렛하우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오닐이 한동안 머물렀던 셸턴 요양소도 사라졌다. 리지필드 브루크팜 대저택은 지금도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뉴저지 애그니스의 고향, 아들 셰인이 아르바이트하던 해수욕장은 관광객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오닐의 마지막 저택이었던 매사추세츠 마블헤드 집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용모가 수려한 노부인이 정원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친절하게 집안을 안내하고 오닐 관련 사진 자료를 보여주기도 했다. 보스턴의 포레스트힐 공원묘지 오닐의 무덤에는 아내 칼로타가 심은 월계수가 무성하게 가지를 뻗으며 돌비석을 감싸고 있었다. 프로빈스타운으로 가서 바닷가 창고극장이 있었던 자리에 세운 기념비도 보고 왔다. 그의 작품과 유품을 수장하고 있는 예일대학교에도 들렀다. 그가 작가의 결심을 굳힌 폐결핵 요양원도 가보았다. 뜨내기 인생을 개탄하며 “제기랄, 호텔에서 태어나 호텔에서 죽네” 하던 보스턴의 셰라턴 호텔은 흔적도 없었지만, 나는 그 언저리를 이리저리 배회하고 돌아왔다. 뉴욕 부둣가, 그가 방황하며 자살을 기도했던 그 옛날 그 술집도 사라졌지만, 그 장소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가 의기소침해서 바라보던 뉴욕의 바다는 여전히 갈매기들이 신나게 울어대며 날고 있었다. 이 밖에도 나는 작가의 흔적을 찾아 수없이 많은 곳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신문과 잡지와 강연과 세미나를 통해 답사결과를 발표하면서도 나는 오닐의 인생과 예술을 충분히 전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술적인 측면에서 쓸 생각이었는데, 그런 책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의 인생과 예술을 소설 써나가듯이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글 쓰는 길잡이가 된 것은 오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발간된 『서한문 선집』이었다. 편지를 읽으면 오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닐은 편지 한 통 쓰면서 하루를 꼬박 바칠 정도로 열과 성의를 다했다. 편지는 그만큼 중요했다. 편지는 은둔 생활자 오닐의 유일한 출구였다. 그 편지는 오닐 인생의 비경(秘境)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을 쓰면서 주안점을 둔 것은 극작가 오닐은 어떤 인생을 살다 갔는가, 그의 인생과 예술은 어떻게 서로 호응하며 열매를 맺고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1988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서 유진 오닐 연구는 오닐 작품의 ‘예술성’ 규명에 집중했다. 그의 희곡 작품의 다양성, 복합성, 기법, 중첩된 사상, 무대기술 등의 주제도 새롭게 다루어졌다. 스트린드베리, 니체, 도교,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등으로부터 받은 영향에 관해서도 연구가 진행되었다. 유럽 연극과 미국 연극의 역사적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평가하고 논평하는 논문들도 허다하게 발표되었다. 오닐의 여인들, 오닐의 시대와 가족, 오닐의 친구들, 오닐과 연출가들, 배우들, 오닐의 집, 오닐과 여행 등 수많은 주제가 전 세계적으로 거론되고, 논의되고, 해명되었다. 이 책은 극작가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요, 연인이었던 한 예술가의 포괄적인 초상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오닐의 편지 속 한 구절을 가슴에 담고 그의 심부(深部)를 조명하는 지표로 삼았다. “예술가로 남기 위해서 작가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역사를 잊고, 철학을 잊고, 지난 전쟁을 잊고, 그 전쟁이 이 나라에 한 일들을 잊고, 그 전쟁이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것을 잊어야 합니까?” 보가드 교수가 편찬한 방대한 『오닐 서한 선집』과 버지니아 플로이드의 저서 『유진 오닐의 창작노트』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셰퍼나 겔브의 전기 관련 서적은 오닐 연구의 기본이었다. 오닐이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의 회고록, 인터뷰, 자서전, 서한집, 그리고 수많은 동시대 비평가들의 평론집은 너무나 소중한 길잡이가 되었다. 책 말미에 소개한 참고서적들은 이 책의 원천적 자료였음을 밝혀둔다. 인용한 편지는 긴 원문에서 필요한 부분을 축소 번역한 것임을 밝혀둔다.

한여름 밤의 꿈

문득 폴란드의 셰익스피어 학자 얀 코트(Jan Kott)가 생각난다. 그는 [셰익스피어는 우리들의 동시대인]이라는 책을 써서 전 세계 연극인들과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사람이다. <리어 왕>과 <한여름 밤의 꿈>의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어서 현대 연극사에 새 장을 연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의 업적도 얀 코트의 이론적 뒷받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얀 코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방대하고 웅장하고 어려워서 접근하기 힘들어 보이는 세계문화의 유산 셰익스피어를 우리 곁으로 가깝게 끌어온 재능 때문에 그 빛나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우리 동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었다. 그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딱딱한 학술 강연보다는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을 더 좋아했다. 남대문시장의 사람들, 활력, 그 벌거벗은 삶의 소용돌이에 도취되어 떠날 줄 몰랐다. 셰익스피어가 다룬 드라마는 그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언제나 국경을 초월해서 우리 주변에 손에 잡힐 듯이 깔려 있었다. 그가 한 말 가운데서 흥미로운 것은 빅토르 위고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위고는 1850년대 말 채널 아일랜드에 유배당한 적이 있다. 위고는 아들과 함께 어느 겨울날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그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아들도 절망적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번 유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위고는 대답했다. “오래 걸릴 것이다.”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지내시겠어요?” 아들의 질문이다. “바다를 보면서 지내겠다. 너는 뭘 할래?” 위고는 궁금했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하지요.” 아들의 답변이었다. 위고의 아들은 나중에 유명한 셰익스피어 번역가가 되었다. 얀 코트가 전해준 이 에피소드에서 내가 강하게 느낀 것은,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 위고를 껴안아준 바다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불운했던 정치적 유배는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그 바다는 지금도 영원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변하고 있다. 각자의 현실도 변하고 있다. 위고의 현실도 변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위고가 유배된 현실 속에서는 그의 동시대인이었다. 내가 전란 중에 포탄 속에서 읽었던 셰익스피어는 나의 동시대인이었고, 나의 암담했던 현실을 비춰보는 거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시간과 나의 현실, 이 두 시간이 서로 밀접한 정신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면 셰익스피어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동시대인이 될 수 있다.

한여름 밤의 꿈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셰익스피어 4대 희극》에 수록된 <한여름 밤의 꿈>이 범우사에서 처음 간행된 해가 1997년이다. 이 작품의 번역은 이보다 훨씬 앞서 1986년 당시 연극협회 이사장이던 김의경 씨가 영국의 연출가 패트릭 터커를 초청해서 무대에 올리려고 나에게 일을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극의 일은 급하고, 바쁘고 서둘게 된다. 나의 번역 일도 시간에 쫓기며 하는 일이었다. 셰익스피어 일을 이렇게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고 야만스럽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일은 그럭저럭 마무리되고 공연도 무난히 끝났다. 연출가의 실력이 워낙 좋았고, 우리나라 말을 모르는 외국인이라 언어의 문제가 그리 까다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늘 미진한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연극평론 일과 학교 일로 이 일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범우사에서 걸려온 전화벨이 울렸다. 번역서를 내자는 요청을 받고 나는 이 작품 첫번째 대본에 개역과 교정을 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고 마침내 무거운 짐을 내리며 한 숨 돌리게 되었다. 셰익스피어 번역의 주기는 10년이 이상적이다. 10년이면 언어가 달라진다는 것이 어문학자들의 주장이기에 번역본은 그것을 고비로 새롭게 손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이다. 문제는 우리의 일상 언어가 달라지는 것만이 아니고, 읽으면 읽을수록 언어적 해석이 달라지고, 더 좋은 묘안이 떠오르기도 하며, 배우의 발성에 도움 되는 연결과 휴지의 기발한 발상이 불쑥 생각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책 펼칠 때마다 나는 자꾸만 고치고 싶어서 몸살 난다. 개역의 기회를 학수고대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읽고 번역하고 고치는 일은 늘 어렵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읽으면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은 음악과 춤과 대사가 달빛이 되고, 숲이 되는 환상 속에서, 정상과 비정상이 화합하고, 가능과 불가능이 자리를 바꾸는 사랑의 축제이기에 상상력 속으로 미친 듯 빠져 들어가야 한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초창기 희극의 실험적 모색기를 지나서 낭만적이며 철학적인 성숙기로 향하는 길목에서 거둔 수작이다. 무궁무진한 언어의 희롱 속에서 웃고 즐기면서 이중 삼중의 의미가 숨어 있는 저변底邊의 진의를 건지는 수확이 없으면 개역과 교정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반죽을 하면 할수록 탄력이 생기는 일은 이 일을 두고 하는 말인가. 범우사에서 셰익스피어 책을 내면서 꽤 세월이 흘렀다. 놀랍고 반가운 것은 꾸준히 셰익스피어 책을 낸다는 사실이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하철에서도 읽을 수 있는 셰익스피어 문고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윤형두 회장과 나눈 적이 있는데, 어느 새 《한여름 밤의 꿈》이 희곡선 작은 판형으로 나왔다. 이 일은 범우사 편집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전철에서, 공원에서, 길에서, 로비에서 햄릿이 호주머니에서 얼굴을 내밀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방에서 나와 키스를 하며, 헬레나와 허미아가 안주머니에서 바깥주머니로 가다가 만나고, 리어왕이 뒷주머니 핸드폰에서 코델리아를 안고 나오는 드라마가 일상의 그림이 되는 날이 눈앞에 오고 있는 듯하다.

헨리 4세 1부

셰익스피어 사극은 영국 왕조 시대 이야기입니다. 전쟁과 해외 원정이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면서 국민들은 폭력과 약탈, 기근과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존 왕> <리처드 2세> <헨리 4세>(2부작) <헨리 5세> <헨리 6세>(3부작), <리처드 3세> 등 영국 역사극은 반란과 폭동, 정치적 책략과 배신 등 왕권 쟁탈전이 되풀이되면서 평화와 질서가 유린되는 수난의 기록입니다.(중략) 이 모든 영국사의 참극과 그 이후 세계에서 전개된 전쟁의 역사를 보면서 나는 왜 전쟁은 끝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첫걸음으로 영국의 역사를 읽고, 셰익스피어 역사극을 이해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는 정말이지 오늘과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중략) 나는 <헨리 4세>를 읽으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재미있고, 지혜롭고, 감동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재미의 원천은 왕자와 폴스타프가 펼치는 드라마 때문입니다. 다양한 성격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도 놓칠 수 없이 흥미롭습니다. 그들의 대사는 자극적이요, 유머러스하고, 감성적이며 본능적입니다. 극은 다층구조입니다. 폴스타프가 술집에서 진행하는 극중극은 그 좋은 예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재미있습니다. 왕권의 질서와 민중의 무질서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파탄으로 가는 2부 끝머리 장면은 생의 비극을 맛보게 합니다. 극중극에서 폴스타프와 왕자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현실과 허구세계의 상반(相反)을 보여줍니다. 대중적 흥미를 고조시키는 교묘한 극작술이요, 연극적 카타르시스입니다. 그 재미에 본인도 압도당합니다. 폴스타프는 모순투성입니다. 꿈속에서 웃고, 현실에서 눈물짓는 인생 그 자체의 부조리와 모순입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이스트치프 선술집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분출합니다. 엘리자베스 시대 대중들은 그랬습니다. 노도와 질풍이었습니다. 전란 속 사람들은 모두 그러합니다, 우리도 남들도 그랬습니다.

헨리 4세 2부

셰익스피어 사극은 영국 왕조 시대 이야기입니다. 전쟁과 해외 원정이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면서 국민들은 폭력과 약탈, 기근과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존 왕< <리처드 2세< <헨리 4세<(2부작) <헨리 5세< <헨리 6세<(3부작), <리처드 3세< 등 영국 역사극은 반란과 폭동, 정치적 책략과 배신 등 왕권 쟁탈전이 되풀이되면서 평화와 질서가 유린되는 수난의 기록입니다.(중략) 이 모든 영국사의 참극과 그 이후 세계에서 전개된 전쟁의 역사를 보면서 나는 왜 전쟁은 끝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첫걸음으로 영국의 역사를 읽고, 셰익스피어 역사극을 이해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는 정말이지 오늘과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중략) 나는 <헨리 4세<를 읽으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재미있고, 지혜롭고, 감동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재미의 원천은 왕자와 폴스타프가 펼치는 드라마 때문입니다. 다양한 성격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도 놓칠 수 없이 흥미롭습니다. 그들의 대사는 자극적이요, 유머러스하고, 감성적이며 본능적입니다. 극은 다층구조입니다. 폴스타프가 술집에서 진행하는 극중극은 그 좋은 예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재미있습니다. 왕권의 질서와 민중의 무질서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파탄으로 가는 2부 끝머리 장면은 생의 비극을 맛보게 합니다. 극중극에서 폴스타프와 왕자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현실과 허구세계의 상반(相反)을 보여줍니다. 대중적 흥미를 고조시키는 교묘한 극작술이요, 연극적 카타르시스입니다. 그 재미에 본인도 압도당합니다. 폴스타프는 모순투성입니다. 꿈속에서 웃고, 현실에서 눈물짓는 인생 그 자체의 부조리와 모순입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이스트치프 선술집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분출합니다. 엘리자베스 시대 대중들은 그랬습니다. 노도와 질풍이었습니다. 전란 속 사람들은 모두 그러합니다, 우리도 남들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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