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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이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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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저 산은 내게>

저 산은 내게

“울고 싶을 땐 산에 가야 한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이러다 무너지겠구나’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무작정 산에 올랐습니다. 그때 ‘저 산’은 정말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의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울고 싶은 것만큼, 잊고 싶은 것도 많았나 봅니다. 굳은 몸과 거친 숨이 가파른 경사에 적응해 풀어질 때쯤 산행은 무모하고 과도해졌습니다. 어느 해였을까요. 북한산을 1년에 100번 오른 적도 있었습니다. 직장을 다닐 때였으니, 52주에 걸쳐 토-일, 토-일로 이어간 여정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독한 산행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백운대 정상까지, 어떤 날은 대동문~대성문~대남문을 잇는 북한산성 주능선까지. 몸이 힘들어서였을까요. 산을 오르내리며 저를 적시고 있던 슬픔과 울분이 사라졌습니다. 마치 산으로 들어서듯 초록초록한 본문을 한 장 한 장 펼치면 아시겠지만, 『저 산은 내게』는 지상에서 입은 내상의 치유 기록입니다. ‘이 산 저 산 떠도는 바람’에 지친 몸과 강퍅해진 마음을 씻어내린 시간을 산을 오르듯 우직한 문장으로 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울고 싶을 땐, 산에 가야 합니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 이루어진 중앙아시아에서 히말라야에 이르는 산악 지역에는 삶 전체의 희망을 ‘산’에 건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 산을 천 번 오르면 꿈이 이뤄진다, 저 산 둘레를 백팔 번 돌면 지난 생애의 잘못이 씻겨 나간다…… 당신이 어떤 산을 오르든지 마음속 품은 꿈이 한두 개는 이뤄질 거라 믿습니다. 산은 매혹 그 자체입니다. 산의 아름다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느 가을, 홍조 띤 숲길을 걷다가 멈추었을 때 절감했습니다. 단풍 숲을 빠져나와 곁에 있는 바위로 잠시 물러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서쪽 낮은 하늘로 노을이 붉었습니다. 그 붉디붉은 기운을 머금고 멀리 파도로 펼쳐진 장대한 산세에 압도당해 말을 잃었습니다. 보이는 풍경 전체가 붉어,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생각했습니다. 산행은 정상에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말 끊긴 곳에서 완성되는구나! 여러 해 동안 홀로 잠행한 산행의 기록을 모아 한 권의 간소한 에세이를 내놓습니다. 북한산, 지리산, 알프스, 시베리아…… 그 산과 길의 흔적을 반추하며 저의 새벽은 사유의 시간으로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산을 오르는 일이란 삶의 고단함을 작은 배낭에 밀봉한 채 확산(몸)과 수렴(마음)을 오르내리는 수행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도대체 이 울퉁불퉁한 지구에서 산을 오른다는 건 무엇일까요. “힘들게 산에 왜 올라?” 얄미운 표정으로 묻는 지인들을 멀뚱멀뚱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등산이란 무엇일까?’에 답을 내놓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의 산행 기록을 이 조그마한 책으로 묶으며 이렇게 속삭여봅니다. ‘등산은 우리를 자꾸만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인, 못된 지구 중력과의 우아한 드잡이다!’ 되도록 많은 분이 저의 ‘좌충우돌’ 산행기를 읽고, 지구인의 숙명인 중력과의 한판 승부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주말을 이용해 배낭 하나 메고 중력과 맹렬히 싸우다 보면 허벅지가 딴딴해지고, 숨이 거칠어지면서, 문득 지구를 이탈해 달에 가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인생을 오르내리고 계시나요? 그곳이 어디든지 중력을 잊고 통통 튀면서 가볍게 오르내리시길 기원합니다.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행복을 꿈꾸기 위해 우리는 문을 박차고 나가야 합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복음과 경전을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고, 달변의 멘토와 자기 계발서의 호언장담에 마음을 내줄 필요도 없습니다. 신발 끈을 여미고 폐쇄된 공간에서 훌쩍 벗어나는 게 우선입니다. 행복은 지금 있는 공간으로부터의 ‘이탈’ 가능성에 비례합니다. 해발 고도를 높일 때 우리는 행복에 잠길 수 있습니다. 자, 워밍업은 끝났습니다. 이제 산에 오를 차례입니다. 우리, 산에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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