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안에 들어온 작은 나무 인형
10여 년 전, 우연히 동숭아트센터에서 현대 꼭두 조각가 김성수 전시회를 보았고, 이어 꼭두박물관에서 실제 꼭두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김옥랑 관장님이 경북 어느 곳에서 구했다는 실제 상여도 보았습니다.
무척 놀랐습니다. 오래도록 꼭두만 조각하는 사람도, 평생을 꼭두와 상여를 모으는 사람도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꼭두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고, 책과 잡지, 인터넷을 뒤져 더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대강의 줄거리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야기는 좀처럼 완성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차로 마무리를 하고는 김동성 선생님께 보여 드리고 조심스레 그림을 부탁드렸습니다, 원고를 본 김동성 선생님은 바로 그러마 답을 주셨습니다. 기쁘기는 하였으나 선생님 명성에 부끄러운 글이 될까 봐 그 이후에도 고치고 고치기를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나무를 깎아 직접 꼭두를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꼭두 조각가 김성수 님을 수소문하였고, 마침내 경북 성주군 작업실로 찾아갔습니다.
작업 과정을 직접 재연해 보여 주신 2016년 11월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김성수 선생님을 뵙고 나서야 그림책을 완전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사진들은 김동성 선생님 손에 의해 아름답고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저승길을 먼저 살펴봐 주고 안내한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요. 알 수 없어 두려운 그 길을 노래하고 춤추며 함께 가 준다니 이 얼마나 든든한 존재인지요. 그러나 꼭두는 숨이와 꼭지처럼 삶의 길동무이기도 합니다.
꼭두 아저씨는 꼭지에게 당부하지요. 나중에 숨이가 하늘나라 갈 때까지는 이 세상 동무로 함께 살며 숨이를 지켜 주라고. 그런데도 신 할머니 장례식 날 꼭지가 다른 꼭두들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러자 아저씨는 꼭지를 끌어당겨 둘러업고 작은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상여가 산길을 다 돌아 나갈 때까지 토닥토닥 어린 꼭두를 위로합니다.
아저씨 등에 업혀 있는 꼭지 뒷모습이 책을 덮고도 내내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제가 못한 말을 그림으로 다 해 주신 김동성 선생님 감사합니다.
*
이 그림책을 마무리할 무렵 이태원 참사 비보를 들었습니다 …….
꽃보다 더 아름다운 우리 딸들과 우리 아들들 가는 먼길, 덜 무서우라고, 덜 외로우라고, 덜 지루하라고 삼가 ‘길동무 꼭두’를 바칩니다. - 2022년 초겨울
몇 년 전, 우연히 달력에서 노도라는 국악기 사진을 보고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퍼뜩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몇 년이 지나도록 뚜렷한 꼴을 갖추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구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노도의 장대에서 노도새 발이 쑥 빠져나오듯 이 이야기도 완성되었습니다. 그 후 김동성 선생님의 정성스런 그림으로 노도새는 마침내 온전한 새 생명을 얻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국악기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어 책도 찾아보고 박물관에도 가 보았습니다. 국악기 자체도 멋졌지만 국악기 위에 새나 용, 봉황 같은 여러 가지 동물들도 장식해 놓은 게 여간 멋진 게 아니었습니다. 볼수록 재미있고 신비로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 그림책 표지를 넘기면 바로 나타나는 면지의 악기 그리고 그림책 안에 나오는 악기는 국악박물관에 가서 본 바로 그 악기들입니다.
우리 어린이 친구들도 이 그림책 『노도새』와 만난 걸 계기로 국악기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윽고 새 생명을 얻은 노도새가 세상으로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친구들도 길에서 노도새를 만난다면 사랑이와 파랑이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세요.
노도새를 자유롭게 훨훨 날게 해 주신 김동성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말, 들어본 적 있나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는데, 무언가에 대한 사람의 믿음과 기대가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합니다. 미국의 한 교수가 초등학생 집단을 대상으로 실험하여 놀라운 긍정의 힘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태오는 어렵사리 올빼미 할머니에게 받은 황금 올빼미 꿈표를 허세를 부리다 그만 세민이에게 주고 맙니다. 그 후 날마다 “너 황금 올빼미 꿈 꿨어?” 하고 다그치듯 물으며 진짜인지 가짜인지 세민이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태오와 달리 세민이는 황금 올빼미 꿈표가 소원이 이루어줄 것이라고 처음부터 완전히 믿습니다.
세민이의 강한 믿음은 알게 모르게 차츰차츰 자신을 변하게 하고, 마침내 간절히 바라던 소원도 이루어집니다. 황금 올빼미 꿈표를 쓰지도 않고 그냥 갖고만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 신기한 걸 모으는 걸 좋아했습니다. 색깔이 예쁜 돌이나 조개껍데기, 멋진 편지지, 반짝이는 카드, 희귀한 우표, 딱지, 구슬, 지우개 같은 걸 나만의 보물 상자에 넣고 애지중지했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는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마법의 부적으로 여기고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그래서 진짜로 소원이 이루어졌냐고요?
이루어졌고말고요. 먼 지방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나는 그 카드를 손에 꼭 쥐고 빌었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멀지 않은 날 아버지는 내 바람대로 과자와 옷을 사갖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날은 아버지 일이 끝나 오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간절히 빌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황금 올빼미 꿈표는 내가 어린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게 막아주고, 또 바라는 걸 이루게 해주는 마법의 카드입니다. 하지만 최고로 재밌게 논 날 황금 올빼미 꿈표를 베개 밑에 넣고 자야만 한다는 사실! 잊지 말기 바랍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느닷없이 내 갈비뼈를 헤집고 들어온 강태오, 양세민, 조형식. 아프기도 간지럽기도 했지만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나는 펭귄이 새끼를 발 위에 올려놓고 굴리듯 이 아이들을 마음속에서 굴리고 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세상의 또 다른 강태오, 양세민, 조형식.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손 내밀어 화해하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씩씩하게 나아가기를, 그렇게 ‘왕따’ 없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믿는다. 얘들아, 그렇게 해 줄 거지?
몇 해 전 가을,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모여 서울숲에 갔다가 누군가의 제안에 이렇게 논 적이 있었습니다. 20대에서 60대까지 다 한데 어울려 노란 은행잎이 지천으로 깔린 공원을 어린애처럼 뛰어다녔습니다. 놀이가 끝나고 은행나무 잔디에 벌러덩 드러누워 헥헥대면서도 얼마나 즐거웠는지, 버석거리던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었더랬지요.
겨우 1년 전인데도 그때가 정말 꿈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는 세계 여러 나라에 비슷한 형태로 널리 퍼져 있다고 합니다. 이 놀이가 처음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어디서 어디로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 아이들이 비슷한 놀이*를 하며 즐거워한다는 게 정말 흥미롭습니다,
어서 코로나19가 물러가고 일상이 되돌아오면 다시 모여 한바탕 그때처럼 놀고 싶습니다. ‘무궁화꽃이 춤을 춥니다’ 할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소리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불러 모아서요. 어서 그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2020년 10월
국내 100쇄 출간을 기념하며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Love You Forever)』가 국내 100쇄 출간을 기념하여 또 하나 새로운 그림책으로 태어났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화가 이세 히데코의 그림에 맞춰 원작을 조금씩 빼고 다듬는 동안, 처음 이 책을 읽고 번역하면서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습니다.
많은 독자가 공감과 위로의 말을 보내왔고, 되풀이되는 자장가 부분은 여러 사람들이 곡을 붙여 너도 나도 유튜브에 소개할 만큼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었습니다.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된 것이 2000년이었으니, 그때 엄마 품에 안겨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훌쩍 자라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첫 독자인 어린 아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20대 청년이 된 것처럼. 그리고 그 사이 작가 로버트 먼치도 50대에서 70대가 되었네요.
갓난아기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어른이 되고, 다시 부모가 되는 영원한 사랑의 대물림을 겪은, 또 앞으로 겪을 그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또 하나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를 바칩니다. 아울러 로버트 먼치 작가에게도 변함없는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이 그림책은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얼개를 따왔으나, 비극으로 끝난 호랑이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복한 호랑이 이야기입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모르는 이는 없을 거예요. 할머니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거나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었거나 해서 잘 알고 있겠지요.
나는 어릴 적에 옛이야기를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이 그림책에 나오는 오누이처럼) 들었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어서 도대체 이 이야기가 다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한테는 이야기보따리가 잔뜩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진짜로 엄마가 이야기보따리를 어딘가에 숨겨 두고 있는 줄 알았지요(이 그림책에 나오는 호랑이처럼).
그런데 말예요, 나는 어릴 적부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수숫대에 엉덩이가 찔려 죽은 호랑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 엉덩이가 저절로 움찔거렸어요.
그 호랑이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가 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끝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걸 보면 말예요. 이 그림책 속 호랑이도 수숫대에 엉덩이가 찔려 죽은 호랑이 이야기를 소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리한 인간 아이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요. 그렇지만 할머니가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에 홀딱 빠지고 말아 호랑이는 이야기보따리가 장롱에 있다는 말에 그만 속아 넘어가고 말아요. 겉보기는 무섭지만 참으로 순진하고 귀여운 호랑이잖아요, 글쎄.
이 그림책 속 또 하나의 이야기 「두꺼비 등에 팥고물 뿌린 호랑이」는 아무리 들어도 재미있어요. 사나운 호랑이조차 멋진 ‘이야기꾼’으로 거듭나게 할 만큼요.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겠지요.
실감 나게 그림을 그려 주신 김옥재 선생님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유난히 뜨거운 2016년 한여름에 김하루
어릴 적 살던 청구동 산꼭대기 집에는 멀리 남산이 보이는 창이 있었습니다. 그 창에서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빨간 케이블카 두 대가 서로 엇갈려 지나갔다가 다시 만나고고 하는 모습을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저 아래 골목으로 학교에서 돌아오는 언니가 보이면 나는 퍼뜩 현실로 돌아와 언니야-, 들뜬 목소리로 소리쳐 부르고…….
우리는 이렇게 일찍부터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살아가는 일은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기다림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자라게 하지요.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글 가운데 좋아하는 낱말을 하나씩 들어 보라고 했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언니’라고 말했습니다. 서양에는 언니나 오빠라는 호칭이 따로 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언니라는 말이 참 다정하게 들렸다고요. 언니라는 말이 얼마나 예쁜 말인지 그때 새삼 느꼈습니다.
머릿속에 한 장의 사진처럼 남아 있는, 어린 동생이 언니를 기다리던 창이 그림책으로 살아나 기쁩니다. 마치 권영묵 선생님이 내가 살던 몇 십 년 전 청구동으로 두 딸을 데리고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습니다. 내가 남산의 케이블카를 따라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곤 했던 그때처럼.
권영묵 선생님과 두 딸에게 아주 많이 고맙습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려 본 적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몇 년 전에 텔레비전에서 동생만 데리고 태국으로 돌아가 버린 엄마를 아빠와 딸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며칠 후 이 동화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텔레비전에 본 그 아이 이름을 나는 한태라고 지었습니다. 한태가 만난 일본 할머니는 내가 실제 만난 사람입니다.
같은 나라 안에 살고 있지만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을 나는 이 동화 속에서 만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한태와 일본 할머니의 외로움과 아픔을 알 수 있다면, 그래서 가까이 있는 다문화 가정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간다면, 이 동화를 쓴 나는 아주 기쁠 것입니다.
내가 사는 동네의 대형마트는 다른 곳과 달리 다문화 가족이 많이 옵니다. 근처에 남동공단이라는 커다란 공단이 있어 외국인 근로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 가족, 장보는 젊은 부부, 막 일을 마치고 먹을 걸 사는 근로자들이 거의 반을 차지할 만큼 많습니다.
하지만 피부색과 말이 달라 금세 눈에 띄는 그들을 사람들은 흘깃흘깃 쳐다봅니다.
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만 보며 걸어가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 사람들 기분을 압니다. 나도 오래 전 일본에서 몇 년 생활할 때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피부색은 다르지 않아도 그 나라 말을 잘 못하는 우리가 외국인이란 걸 그 사람들은 금세 알아챘습니다.
외국인들은 세 들어 살 집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하물며 "한국사람, 때 밀지 마세요!"라고 한국말로 삐뚤빼뚤 써 붙여 놓은 대중목욕탕도 있었습니다. 쉽게 말을 쉽게 배우지 못한 중국사람들은 대놓고 무시하고 따돌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한태는 정말로 엄마를 다시 만났으면 좋겠고, 끝까지 한국에서 사실 거라는 츠야코 할머니는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격려 말씀 해 주신 송언 선생님, 앞으로도 좋아할 거구요, 늘 아이들 상처를 보듬어주시는 정춘순 소장님께도 고마운 맘을 전합니다.
즐겁게 그림을 그려준 짝꿍 민들레와 첫 동화책을 예쁘게 만들어주신 미래아이 식구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