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저는 시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내가 너를 업고 갈 테니 나중에는 네가 나를 업고 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짐만큼 저는 시를 튼튼하고 등이 넓은 품으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제 길을 찾지 못하는 부실한 시업時業앞에서 번민의 날을 보내기 일쑤였습니다. 몇 년간 시도 쓰지 못하고 오직 시를 읽는 위안으로 시간을 견디기도 했습니다. 제 딴에는 그것이 모색의 길이라 애써 자위했지만 한동안 시 쓰기에 대한 연민과 환멸 사이에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그 고민 과정에서 시에 대한 기대나 욕심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얼룩 뺀 빨래처럼 시도 가벼워졌습니다. ('수상 소감'중에서)
몇 권의 시작 노트를 갖고 있지만,
이번처럼 펜에 잔뜩 힘을 주어
찬찬히 시를 옮겨 적기는 처음이다.
적어 놓고 보니, 글씨에 담긴 시들이
소풍 가는 아이들마냥
들뜬 기색이 역력하다.
내년이면 시로 등단한 지 서른 해,
내친김에 이 육필시집이
내 시 쓰기의 오랜 열망과 고통을
숨김없이 고백하고, 스스로
작은 위안으로 거듭나는 자리가 되기를.
201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