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면서 썼다.
아니, 정확히 말해 돌아다니다가 간간이 눌러앉아 썼다.
글을 쓰다 나무 그늘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해가 지는 것을 목격했다.
흐르는 물을 따라 걷다가 떠오른 문장들, 나뭇잎을 주워 구경하다가 덩달아 줍게 된 단락들이 모여 글이 되었다. 노트북이 켜지길 기다리는 동안, 메모할 종이와 연필을 찾는 동안 날아가 버린 것들은 어딘가에 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나에겐 삼촌이 많았다. 아빠의 수리 센터에서 일하는 기술자들 중에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사람들을 모두 삼촌이라고 불렀다. 그 삼촌들 중엔 도배사도 있고 기계공도 있었다. 주인공 은우가 길 위에서 삼촌을 만나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지만 내 소설에 삼촌이 등장하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해 주는 삼촌이 어린 내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물음표가 떨어진 지점에서 길은 시작됐다.
아직 많이 서툴다. 이 글을 쓰는 과정은 좋은 작가가 뭘까 고민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갈 길은 먼데 다리가 움직여 주질 않고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는 날이 가끔 있었다. 그런 날은 조금만 걷고 그늘에 앉아 쉬었다. 쉬면서 배낭을 뒤져 쓸모없는 것은 버렸다. 그렇게 스무 날을 걸으니 바다가 나왔다. 뜨거운 여름 바다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 걸음으로 못 갈 곳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바닷가에서 마지막 장을 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름. 퇴고를 거듭하는 사이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내 주변만은 늘 여름이었다. 전혀 쿨하지 않고 뜨거운 속을 죄다 드러내며 덤비는 여름이 나는 좋다.